조선의 역사이야기와 연천의 인물이 만나… ‘특별한 연극’으로 돌아왔다
연천군민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뿐. 연천은 수도권 최북단지역으로 휴전선을 32㎞ 접하고 있는가 하면 지역의 98%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게다가 지난 60년 동안 수정법이라든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재보호법 등 각종 중첩 규제로 수도권에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 때문에 외부인들은 연천을 마치 문화의 뿌리가 없는 도시처럼 생각한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연천문화원(원장 이경순)은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서는 현재 보유한 문화자원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내고, 단절된 역사인물을 재구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연천의 대학자이자 행정가, 예술가, 정치가였던 미수(眉?) 허목(許穆, 1595~1682년) 선생을 기리는 ‘제1회 미수문화제’를 개최해 지역 문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연천문화원이 올해는 연천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관 하나 없는 연천군에서 연극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연천문화원은 극단 ‘연천’과 함께 조선왕조의 재미있는 역사이야기와 연천의 역사적 인물을 연극작품으로 제작해 시리즈 공연을 선보인다.
오는 9월 11~12일 양일간(오후 2ㆍ4시) 연천수레울 아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연천군 지역 청소년들과 지역주민을 위한 ‘역사와 연극이 결합한 축제’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연극을 선보이는 차원을 넘어 연천문화원 상주 예술단체인 극단 ‘연천’의 정기공연으로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눈에 띈다.
극단 ‘연천’이 주최하고 연천문화원이 주관, 연천군과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이번 공연에는 ‘뒤주속의 천국’, ‘대왕의 문자’, ‘미수, 은거당에서 붓으로 말하다’ 총 세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우선, ‘뒤주속의 천국’은 1749년 사도세자가 영조의 건강 때문에 대리청정을 하게 되자 사도세자와 영조를 이간질하는 노론과 정순왕후에 의해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게 되는 스토리를 각색해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떠나 정치권력이 균형을 잃게 됐을 때 생기는 비극상을 표현했다.
이와 함께 ‘대왕의 문자’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에 관한 스토리다.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훈민정음편찬을 책임졌던 예조판서 정인지와 훈민정음 제정에 끝까지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최말리의 극한 대립 속에서 한글 창제의 역사적 배경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역사연극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미수, 은거당에서 붓으로 말하다’다. 치열한 당쟁에서도 선비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미수 허목 선생의 삶을 조명한다. 권력의 집행자로서가 아니라 학자로서, 임금을 보필했고 늘 군덕(君德)과 시정에 대한 의견을 올려 정치가 바로 되게 한 허목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는 무대로 꾸며진다.
특히 조선 중기에 정승을 지낸 우암 송시열과 허목은 당쟁이 심했던 당시에 권력투쟁을 벌인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우두머리였다. 연극은 이 둘의 치열했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주목한다.
무엇보다 ‘동방의 제1인자’로 불렸던 전서체의 주인공이기도 한 허목 선생이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에 소재한 ‘은거당(연천군 향토문화재 제14호)’에 칩거하면서 지인들이 청해오는 묘비문이나 비문 등을 써주고 시와 글을 쓰면서 보낸 말년을 통해 그의 인생 철학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처럼 세 작품은 영조vs사도세자, 정인지vs최말리, 허목vs송시열의 극한 대립되는 과거의 역사인물을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인물간 대립 속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역사이야기와 인간 내면의 모습을 집중하는 것이 이번 연극 시리즈의 특징이다.
이번 연극은 박기선이 연출하고 문석희, 이성주, 도창선, 김상현, 김진일, 최정숙, 김애실, 안명주, 안영일, 김수정 등의 30~40대 쟁쟁한 중견배우들이 출연해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그동안 선이 굵은 연기를 하며 남성적인 매력을 보여줬던 배우 도창선(44)은 이번에 허목 선생역을 맡아 지적이면서 따뜻한 감성을 소유한 인물로 분한다. 연출자와 배우, 그리고 연천문화원 식구들은 요즘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무대에 올리기 전 마지막 점검이 한창이다.
문화원과 지역극단이 힘을 합쳐 처음으로 연극무대를 선보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장 큰 것이 재정적인 어려움이었다. 그래도 2013년 경기문화재단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 공모사업에 선정돼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 조금은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앞으로 돈 걱정없이 탄탄하게 성장해 연천군과 경기도를 대표하는 지역 극단으로 성장하는 것이 극단 ‘연천’의 김탄일 대표와 연천문화원 이준용 사무국장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이경순 연천문화원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번 조선왕조 500년 연극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됐다”며 “문화예술과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천은 30만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해 오고 있는 자연·역사·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천혜의 보고’임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반세기가 넘는 동안 성장이 멈춘 상태다. 경제적인 발전은 발목이 묶여 있을지 몰라도 2013년 연천은 연천문화원을 중심으로 문화적 성숙의 단계를 걸어가고 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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