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한옥문 열고 꽃심어 청사초롱 불밝히니… 전통 의식주체험 줄섰네
부천시의 한옥마을이 확 바뀌었다.
마을이래봤자 현대식 한옥 9동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은 평일 오전부터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등 어린이 단체 관람객 수 백 명으로 북적거린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가족 단위 관람객 1천명이 몰린다.
이곳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닫힌’ 공간이었다. 시민은 발길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 놀라운 변화를 이끈 것은 부천문화원(원장 박형재)이다. 애정과 땀을 쏟은 문화원 직원들은 ‘사람이 힘’임을 보여줬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콘텐츠가 최대 무기’라는 것을 입증했다. 새 건물 짓기에 열을 올리고 콘텐츠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
부천시의 한옥체험마을(원미구 상동)은 으리으리한 현대식 건물인 한국만화박물관의 뒤편에 자그마하게 있다.
2011년 부천문화원이 부천시로부터 위탁 운영하기 전에는 무형문화재 공방 거리였다.
9개 현대식 한옥에서 9명의 무형문화재가 개인 작업을 벌였다. 문을 걸어 잠그고 그네들의 세계에 집중하는 작업실이다 보니, 시민이 방문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시가 이 무형문화재 공방거리 운영 방침을 시민을 위한 교육 및 체험 공간으로 변경하면서 이유가 생겼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부천문화원이 한옥체험마을로 명칭을 바꾸면서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열린 공간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문화원은 우리나라 김치 명인 김순자씨가 운영하는 김치체험관을 제외한 8개 동에서 전통적인 의식주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소개하자면 이렇다. 우선 마을 입구에 자리한 전통찻집 ‘안다미로’는 모든 재료를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재료 값에 불과한 3천원이면 맛 좋고 건강에도 탁월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마을 전경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마치 대갓집 주인장이 된 느낌이다.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더 있다.
전통음식 체험실에서는 떡 케이크와 쌀강정을 만들어볼 수 있고, 사무실로 사용하는 1개 한옥동에서는 전통악기와 민요, 풍물놀이 등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 어린이들이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한옥 2개동은 4~8인 가족이 잠잘 수 있는 숙박동으로 운영, 주말은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로 인기다. 전기 조리기구를 완비해 도심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숙박동 사이에 조성된 작은 정원과 정자, 그 너머로 펼쳐진 작은 초원과 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의 일부가 있어 보는 재미도 준다.
이 숙박동 사이에 조성된 정원은 또 다른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다. 한옥체험마을을 널리 알린 대표 콘텐츠이기도 하다.
이 정원이 바로 평소에 한옥 1개동(전통혼례실)에서 전시하는 전통혼례복과 가마, 각종 혼례 물품을 실제로 사용해 전통결혼식이 치뤄지는 혼례청인 것이다.
문화원이 전통혼례나 특이한 결혼식을 찾는 시민들이 서울이나 타지역으로 가는 것을 막는 한편, 지역에서 전통을 체감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40만원대에서 100만원대의 비용만 내면, 누구나 한옥체험마을의 주인공이 돼 옛 격식대로 전통혼례를 치를 수 있다. 올해에만 벌써 13쌍이 혼례를 치렀는데, 영화 천녀유혼의 홍콩 작가 부부와 영국의 유명한 담배회사의 손자 부부도 그들 중 하나였다고.
이와 관련 이은경 문화원 대리는 “전통혼례는 우리 문화를 계승하는 것보다 30분만에 판박이 찍듯이 이뤄지는 결혼식에서 찾을 수 없는 가족과 예의 의미를 찾기 위함”이라며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오고 미래까지 유지돼야 하는 것”이라고 전통혼례사업 운영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문화원이 알찬 프로그램으로 한옥체험마을을 운영한 지 3년째.
그동안 최의열 사무국장을 비롯한 문화원 직원들은 삭막했던 공방 거리의 한옥문을 모두 열었다. 꽃과 풀을 심고 재개발지역과 폐가에서 주은 오래된 생활용품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했다. 밤까지 이어지는 시민 발길에 초롱도 달았다.
문화원 직원들은 또 안양, 전주, 원주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전통혼례법을 배웠다. 숙박동에 투숙객이 있는 날이면 밤샘 당직을 서는 것도 모자라, 쉬는 날 없이 이용자의 비용 부담을 줄이려고 직접 전통 혼례를 주관한다.
한옥체험마을 활성화를 위해 ‘뻔뻔부천시티투어’의 마지막 방문지를 한옥체험마을로 정해 운영 중이다. 지역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축제와 연계해 한옥체험마을에서 전통 먹을거리 장터를 열고 공연을 선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열정을 쏟은 시간만큼 켜켜이 쌓인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와 1년 단위로 맺는 위탁 운영 계약은 안정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저해한다. 협소한 공간도 문제다. 상설전통 공연과 놀이가 이뤄지는 데 장애가 된다. 눈에 띄게 높아진 시민 이용률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을까.
문화원이 높은 빌딩숲에서 낮은 기와집이 안기는 여유를 찾아온 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제 단단한 디딤돌을 놓아야 할 때다.
한편 전통혼례 및 한옥체험마을 프로그램 신청 및 문의는 전화(032-651-3739) 또는 홈페이지(www.bucheonculture.or.kr)로 하면 된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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