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문화이용권 현장을 가다]3. 공공미술삼거리의 MDF(마석동네페스티벌)

젊은 예술가와 이주 노동자들… 서로의 편견 깬 ‘문화공명’

경기문화재단이 올해 문화이용권의 기획사업 중 이례적으로 2년 연속 지원한 사업이 있다. 공공미술삼거리가 마석가구단지에서 이주노동자와 지역민 등을 대상으로 벌인 축제 ‘MDF(마석동네페스티벌)’가 그것이다.

연속 지원도 그렇지만, 본래 경제적 여건때문에 문화예술을 즐길 수 없는 소외계층을 주 대상으로 하는 문화이용권(구 문화바우처)의 취지에서 살짝 비껴난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와 관련 문형순 팀장은 “비록 미등록이주노동자이지만 분명한 우리나라의 문화소외계층”이라며 “그들이 제2의 고향에서 지역민과 소통하는 기회를 통해 긍정적 변화와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7일 마석가구단지 내 올해 초 불에 타 검게 그을린 공장.

유리창은 모두 깨지고 검은 그을음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장을 배경으로 록 밴드가 연주할 수 있는 음향시스템과 악기를 설치한 간이무대가 마련됐다. 전문 음악인들의 리허설에 폐허같았던 빈 공장과 그 앞 공터는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오후 7시 본공연에 앞서 행사를 준비하는 스탭과 일찍 찾아온 관람객의 열기는 여느 콘서트장과 다름없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스탭이나 관객이나 조금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의 외국인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MDF(마석동네페스티벌)’은 그렇게 조금 색다른, 그리고 특별한 행사였다.

MDF는 경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경기도 문화이용권 기획사업 중 하나다.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커뮤니티와 문화예술을 결합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활생(活生) 문화공명’으로 지원받았다.

마석가구단지에서 가구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이주 노동자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기획한 동네 잔치다. 2008년 마석에서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미술그룹 믹스라이스(양철모ㆍ조지은)와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알룸(마석이주극장 대표)의 만남이 그 시작이 됐다.

“알룸이 ‘마석 공장에서 록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고 농담식으로 말했는데, 정말 신선했어요. 한국의 이주 노동자가 현지인을 초대하는 음악 축제…. 마석의 공장도 도시 개발로 사라질텐데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서 ‘전설’이 될 즐거움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맘먹었죠.”(양철모)

지난해 이들의 농담은 현실이 됐다. 2012년 10월, 마석가구단지 내 한 공장 옥상에서 한국 인디밴드들의 강렬한 사운드가 울려 퍼졌고 400여 명의 이주 노동자와 지역민이 함께 춤췄다.

그리고 2013년, 다시 한 번 그 광경이 재현됐다.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관객이 모여, 더 늦은 시간까지.

양철모씨는 “오늘 공연이 열리기까지 변수가 많아 정말 살떨렸다. 공장 공사업자의 일정 연기를 설득해야 해서 일주일 전에서야 행사 장소를 확정했고, 지역주민협의체의 허가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오히려 ‘올해는 언제하냐’고 묻는 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불과 1년만에 지역민의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마석의 열대 과육 향연에 초대하고 싶소’라는 타이틀을 내건 제 2회 MDF는 지난해처럼 믹스라이스와 알룸 등이 기획을 맡았다. 알룸은 밴드들에게 일일이 공연에 초대하는 편지를 쓰고 전화를 했다.

“마석가구단지는 누구든 언젠가 사라질 수 있는 곳입니다. 원주민들은 재개발 때문에 사라질 것이고 이주민들은 단속 때문에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남아 있는 것이 무얼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추억과 기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룸이 많은 밴드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이 같은 이주 노동자의 열정에 많은 밴드가 참여했다. 밴드 술탄오브더디스코, 파블로프, 야마가타트윅스터, 요한일렉트릭바흐, 오브라더스 등이다. 이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트럭위에 올라탄 DJ가 마석가구단지와 인근 지역을 돌며 공연을 보러 오라는 내용의 디제잉을 통해 분위기를 달궜다.

이미 공연장에 모여 있던 관객과 스탭은 방글라데시 볶음밥인 기추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황혼에 물든 검은 공장은 수 십 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만든 그 어떤 영화 세트보다 비현실적이면서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관객의 설레임은 배가했다.

이른 시간 행사장을 찾은 마문(36ㆍ방글라데시)은 “한국에 온 지 16년 됐는데 작년에 MDF를 보고 1년 내내 기다렸다”며 “우리같은 외국인만 모이는 행사가 대부분인데 여기선 한국 사람과 예술가들이 다같이 어울릴 수 있어 더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흥분과 기대속에 막오른 MDF는 자정이 넘도록 계속됐다. 보이지 않는 경계에 가난한 마음을 내보이고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처럼 서로 편견을 깨는 ‘문화공명’, 그 자체였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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