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현장답사 병행 ‘알찬 커리큘럼’… 어르신들, ‘역사 공부’ 매력에 흠뻑
대학 1년 등록금 천만원 시대, 입학과 동시에 토익과 자격증, 해외연수 등 마치 스펙쌓기 배틀현장으로 변질된 한국의 일반 대학과는 궤를 달리한다.
‘작지만 큰 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양주역사문화대학은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대학이다. 하버드, 스탠퍼드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지만 학생들의 열정과 알찬 커리큘럼만큼은 유수 대학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이름처럼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양주역사문화대학’은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학교가 아니다. 양주문화원(원장 박성복) 부설 학교다. 강의가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입학 경쟁률이 꽤 높다. 양주를 비롯해 인근 동두천, 포천, 의정부, 저 멀리 부천, 수원, 서울 등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 들고 있다.
이처럼 역사 공부를 하고 싶어 먼길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은 40대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포진해 있다. 어르신들은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그렇게 소처럼 일만 했을 세대다. 나이 들어 몸도 여기 저기 고장 나 성치 못하지만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은 한 나라의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으로 학교에 입학해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주1회 이론강의ㆍ주1회 현장답사, 20~30만원대 저렴한 등록금
수명이 길어진 100세 시대, 이제 평생학습은 일상생활이 돼 가고 있다. 전국 지자체는 앞다퉈 평생학습관을 건립 중이며 도서관, 복지관, 주민자치센터 또한 평생학습이 주요기능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평생학습 롤모델이 되고 있는 양주역사문화대학은 전공별로 나눠서 공부하는 일반 대학과는 다른다. 일명, ‘역사대학교 강의듣고학과 현장보고전공’이다.
현재 1학년 43명, 2학교 45명, 3학년 24명, 연구반(심화과정) 25명이 재학 중인 양주역사문화대학은 책상에 앉아서 역사 기초를 배우는 강의식 수업 1회, 여기저기 다니면서 역사 안목을 키우는 현장 답사 1회 이렇게 이론교육과 답사를 병행하고 있다.
1학년은 인류의 발생과 석기문화를 시작해서 고조선,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공부하고 회암사지, 권율장군묘 등 양주의 주요 역사문화유적과 보은, 경주, 파주, 수원 등지를 답사한다.
2학년은 신라, 고려 등을 중심으로 이론교육과 이와 관련된 남원, 구례, 남양주, 평창, 공주, 부여, 남양주 등지를 둘러본다.
3학년의 경우 총 10회 강의와 10회 답사를 기준으로 진행돼 가장 타이트한 커리큘럼을 자랑한다. 조선의 건국부터 조선 문화, 조선의 멸망, 한국 근대화, 한국 전통 종교 등 방대한 역사를 공부하게 된다.
연구반은 고양, 통영ㆍ여수, 옥천, 서산, 양양, 영주 등 총 6회 답사로 진행된다.
이처럼 양주역사문화대학은 맞춤식 교육으로 벌써 13년째 순항 중이다. 무엇보다 학년별로 20만원~30만원대의 저렴한 등록금으로 경제적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고 있다.
양주역사문화대학의 본질은 단순히 싸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한 학생은 “그 어떤 대학 강의나 비싼 돈 주고 들은 강의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흥분의 목소리를 냈다. 수업의 질도 좋다. “이 정도 수업은 서울대 역사학과 강의에 뒤지지 않는 수업”이라는 후기가 인터넷 블로그와 입소문을 타고 번져나갔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선입견을 한 번에 뒤집는 반응이었다.
홍정덕 지도교수, 거침없는 입담과 재치있는 강의 인기만점
당초 양주역사문화대학은 2001년 양주문화원에서 민요, 서예를 배우던 여성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2009년부터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부부학생도 생겼다. 지금은 여학생과 남학생 비율이 7:3 정도 된다.
문화원은 주1회 장거리 현장답사가 있는 것을 감안해 70세 이상 연령제한을 두었다가 “배움에 나이 제한이 어디 있냐?”는 거센 항의(?)가 받아 결국 나이 제한도 없앴다. 2학년에는 김용무ㆍ이현기 어르신께서 78세 최고령 학생으로 젊은이 못지 않은 학구열을 자랑하고 있다.
홍 지도교수는 중간ㆍ기말고사 문제나 학점 줄 걱정 없이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수업할까를 고민한다.
홍정덕 교수는 “아픈 역사를 가진 국가일수록 올바른 역사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토록 중요한 역사 교육이 홀대받아왔던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역사 학습 태만은 역사 인식의 부재를 낳아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 후유증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께서 역사를 배우는 삶이 행복한 삶이고, 꽤나 높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강의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양주역사문화대학은 이래저래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제껏 지역 문화원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역사를 주제로한 대학을 운영해 온 것만으로 절반의 성공이다. 이제 어느 학교를 졸업했느냐가 아니라 평생학습으로 어떤 능력을 키워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양주역사문화대학 어르신들을 통해 입증해 보이고 있다.
인생 2모작, 3모작해야 하는 100세 시대에 자신에게 맞는 평생학습을 찾아 진정한 배움을 즐기며 또 다른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어르신들은 젊은세대의 ‘역사 학습 태만’이 조금이나마 개선되길 기대해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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