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홍선웅의 ‘해안동’

8년 전 나는 홍선웅의 작업실을 찾아 강화 쪽으로 차를 몰았다. 홍선웅의 작업실로 가는 길은 강화대교를 건너기 전, 그러니까 검문소를 지나면 나오는 모란식당 앞 우회도로였다. 염하강을 따라 굽은 길을 쫓아가다 보면 마을을 가로 지르는 길이 하나 나온다. 그곳이 김포면 월곶면 보구곶리다. 그때 그는 그곳 舊 마을회관에서 10년 째 판각수행 중이었다.

1980년대 중반 ‘민중교육’사건을 시작으로 해직과 복직을 거듭했고, 전교조 활동으로 다시 그 일이 반복되면서 스스로 교단을 떠났다. 그리고 작업을 위해 수도승처럼 길을 떠난 것이 1995년의 일이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판화가 무엇인지 찾아 다녔죠. 도산서원, 병산서원, 학봉 유물전시관도 가서 직접을 판을 확인하고, 부석사, 송광사 등 판목이 있는 곳이면 찾아가서 눈으로 확인 했어요. 그러면서 각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됐죠. 규장각에서 본 고서적은 많은 감명을 주더군요.”

판각의 전통을 깨달은 뒤 그는 베니어 목판을 버렸다. 산벚나무 후박나무 돌배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를 사용했고, 대장경처럼 마구리도 짰다. 판화를 찍은 뒤 본판을 버리던 습관도 고쳤다. 판(板)은 대지요, 각(刻)은 씨앗이며, 형(形)은 그곳에서 난 산물이라 생각했다.

“한번은 겸재 정선이 가본 길을 가 보았어요. 한강 상류에서 하류까지 답사를 한 것이죠. 그가 본 시선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진경’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는 ‘진경 찾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노동자, 농민이라는 1980년대의 인식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순간의 삶의 모습, 삶의 생태계로 사유가 넓어졌다. 동네 아낙네, 아저씨, 시장의 생동감, 그리고 우리 삶의 형식 속에서 민족 문화적 가치를 찾았다.

‘인천 10경’ 연작은 그런 미학적 바탕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이 작품 ‘해안동’은 10경 중 제1경으로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내항을 말한다. 그 일대가 해안동인 셈인데, 내항의 전경은 물론이요 무역선, 월미도, 갑문이 펼쳐져서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그곳이다. 그러나 그는 그 풍경을 바다 쪽에서 본 풍경으로 바꿨다.

해안동 풍경을 보면서 나는 추석 한가위를 떠올린다. 저 풍경에는 이미 가을이 녹아 흐른다. 바다위의 배도, 근대식 건물들도, 산도 하늘도 모두 단풍 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 풍경은 목포 유달산과 겹친다. 인천에는 누이가 있고 목포는 집으로 가는 뱃길이 있기 때문일 터. 진경이란 이렇듯 사람 속에 깃든 참된 풍경의 그리움이 아닐는지.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