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혼수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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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결혼 성수기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는 혼수때문에 고민이 많다. 혼수 문제로 결혼에 이르지 못하기도 하고, 결혼 후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 예전보다 허례허식이 줄었다고는 하나 혼수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조선시대에도 혼례시 혼수를 중요시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양반의 딸로 집안이 가난해 혼수를 마련하지 못해 혼기를 놓친 경우 관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개국 초부터 제도화돼 있었다. 당시 반가에선 혼수없는 혼인은 예가 아닌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부유하고 세력있는 집안을 중심으로 혼수사치가 확산돼 정치·사회적 문제가 되는가하면 중인과 상인에게까지 호화혼수가 번지기도 했다. ‘증보사례편람’에는 ‘문중자(文中子)는 혼인을 함에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재물을 언급하는 사람과는 혼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혼수는 시대에 따라 변화돼 왔다. 직접 옷을 만들거나 고쳐 입던 1960~70년대의 최고 혼수품은 재봉틀이었다. 1980년대에는 당시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컬러 TV가 인기 1위였다. 1990년대 침대, 진공청소기, 무선 전화기를 지나 2000년대에는 대형 TV, 드럼 세탁기, 김치 냉장고, 홈시어터가 그 목록을 이어나갔다.

시대 흐름에 따라 예비 신랑신부들이 선호하는 혼수 품목과 트렌드가 변화하는 가운데 최근엔 신혼집과 이를 채워줄 혼수품, 그리고 신랑신부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몸매 및 건강관리 등이 ‘신(新)혼수’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슨 유행처럼 혼전 임신을 통한 ‘아기’가 혼수품이란 얘기도 나온다.

혼수와 관련한 속설도 많다. 신랑신부 금슬을 해치는 물건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속설 중 하나는 ‘부엌칼’에 관한 것이다. ‘칼은 시어머니가 사줘야 부부가 잘산다’, ‘칼을 혼수로 해가면 집안에 싸움이 난다’는 등의 속설이다. 선풍기, 청소기, 에어컨 등을 염두에 두고 ‘바람이 나오는 혼수를 해가면 남편이 바람난다’, ‘집안에 바람을 일으킨다’는 속설도 있다. ‘진주’는 ‘조개의 눈물’이라는 별칭으로, ‘신부 눈에 눈물바람 나게 한다’는 속설 때문에 예물로 진주를 하지않는 사람도 있다.

혼수는 결혼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갖추는 것이다. 등골이 휘도록 준비하는 것보다 살면서 하나하나 장만해가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더 중요한 건 두 사람의 사랑이고 믿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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