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원의 시대공감]25.수원문화원 ‘짚신신고 화성걷기’

짚신 신고 화성 보며 ‘과거여행’…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깨닫다

볏짚으로 만든 신, 짚신. 그 명칭이 옛 문헌에 등장하는 것을 따져보면 짚신의 역사는 약 2천여 년 전 마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오랜 기간 한국 고유의 대중적 평상화로 서민의 발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짚신은 다양한 소재와 기능의 신발들에 자리를 잃은 채 ‘유물’이 됐다. 수원문화원(원장 염상덕)은 가치가 사라진 짚신에 새 기능을 부여했다. 짚신을 신음으로써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물론, 내가 사는 마을과 그 속의 세계문화유산을 깊이 들여다보게 했다. 형태는 그대로이지만 그 기능은 ‘돋보기’가 된, 새로운 짚신을 만났다.

수원문화원은 지난달 29일 제50회 수원화성문화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짚신신고 화성걷기’를 주최 주관했다.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2천여 명의 체험객이 몰렸다. 1만5천원의 유료 체험 행사였음을 고려하면, 꽤 높은 참여율이다. 4천여만 원의 사업 예산과 참여 인원 수치를 다른 공연과 전시, 체험 프로그램 등과 비교하면 효율성 있는 행사였음이 더 명확해진다.

이 같은 결과를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현장에서 나왔다.

이날 오후 12시 창룡문 현장 접수창구에 모인 체험객 중 인터넷 사전 등록자들은 접수증을 낸 후 짚신과 짚신 주머니, 생활한복 상의, 생수, 지도 등을 받고 본격적인 세계문화유산 화성 걷기에 나섰다. 현장 접수자 대부분은 가족 단위였는데, 짚신 갈아 신고 사진 찍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자녀의 성화에 체험료 지출을 감행하는 모습이었다.

쌍둥이 손녀의 손을 잡고 나타난 권모(67) 할아버지는 “수원화성문화제 구경 나왔다가 우연히 짚신을 봤다. 처음 본 손주들이 궁금해하기에 같이 신고 걷기로 했다.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데리고 나온 이모(39ㆍ여)씨도 “문화제 일정표를 보다가 짚신을 신고 걷는 이색 프로그램이 눈에 띄어 오게 됐다”며 현장 접수를 마친 후 짚신을 신고 기념 촬영에 분주했다.

남녀노소 참여객 모두 짚신을 프로그램 선택 이유로 꼽았다. 도심에서 짚신 신고 걷는 생경한 문화 체험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지난해 참가했던 사람도 많았다. 문화원은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들은 작년에 구매한 소품을 착용하고 체험단에 합류했다. 필요하면 새 짚신만 구매했다. 올해 참가자들은 내년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매년 일정 규모의 체험객을 담보할 수 있는, 행사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창룡문에서 집결한 사람들은 짚신을 신고 세계문화유산을 누볐다. 장안문, 서장대, 수원화성행궁. 수원화성 행궁광장까지 약 2.9km의 구간을 걸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짚신을 등에 멘 참가자들이 많았다. 그 모습이 먼 길 떠나는 조선시대 과객과 겹쳤다. 자신이 사는 수원시와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떼는 것에서 ‘느림의 미학’이 피어올랐다.

특히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걷는 구간 도중 장안문과 서장대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 느리게 걷는 묘미와 흥취를 돋웠다.

부부가 함께 참여한 조모(33)씨는 “짚신 하나 신었을 뿐인데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화성이나 멀리서 본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더 운치 있어 보인다. 라이브로 클래식 음악까지 들으니 더 특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짚신은 내가 사는 동네와 무심코 지나친 화성을 색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시작점이 됐다.

“짚신을 신음으로써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걷고 바라볼 때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주인군 수원문화원 사무국장이 밝힌 행사의 기획의도는 적중했다.

그뿐만 아니라 완주증을 받아 든 체험객 중 일부가 문화원 측에 적극적으로 내년에 활용할만한 아이디어를 내놔, 이 행사가 일회성 체험 프로그램에서 나아가 소통의 장이 되는 또 다른 긍정적 효과를 기대케 하고 있다.

또 문화원 측이 수원의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지팡이를 짚신과 함께 판매하는 시민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어, 내년의 또 다른 풍경이 그려진다.

이와 관련 주인군 사무국장은 “이 행사가 많은 시민이 수원의 자랑을 체감하고 정체성을 되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화성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만큼 앞으로 문화제의 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독립된 전국 단위의 행사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무명 한복에 짚신 신고 봇짐 메고 지팡이까지 챙겨든 나그네 수 천, 수 만여 명이 수원 화성을 걷는 장관이 현실이 되길 바라본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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