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제2의 한석봉”… 묵향 벗삼아 일필휘지
언어와 문자생활에 있어서도 속도와 편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시대에 “내가 바로 한석봉”이라며 일필휘지의 붓질을 자랑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선 중기 가평군수를 지낸 한호(韓濩) 선생(본명 석봉, 石蜂 1543~1605)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열린 ‘제14회 석봉 한호선생 전국휘호대회’가 10월 13일 일요일 전국 각지에서 300여명의 서예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가평군체육관에서 열렸다.
석봉 한호는 추사 김정일과 조선시대 2대 명필가 중의 한 명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석봉 선생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특히 보물 제1659호로 지정된 한석봉 ‘천자문(千字文)’은 선조 16년(1583)에 처음 간행된 이후 왕실과 관아 사찰 개인에 의해 여러 차례 간행되면서 조선시대 천자문 판본 가운데 가장 널리 전파돼 초학자가 한자와 글씨를 학습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제2 한석봉’을 꿈꾸며 진한 묵향(墨香)으로 붓글씨를 써내려가는 현장은 그야말로 진풍경을 이뤘다.
‘서예인들의 꿈의 향연’으로 자리 잡은 ‘제14회 석봉 한호선생 전국휘호대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층이 대회에 참가했다.
특히, 2006년생 최연소 참여자 고승민 어린이부터 1926년 최고령 어르신까지 이 향연이 전국 서예인들에게 꿈의 향연임을 증명해보였다. 참가자들은 경기도를 비롯해 서울, 대전, 인천, 강원, 전북, 경남, 경북, 충북 등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한 걸음에 달려와 대회에 참가했다.
같은날,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사상과 예술정신을 기리는 ‘24회 추사 김정희 선생 추모 전국휘호대회’가 충남 예산군에서 열려 예년보다 참가자가 줄었지만 어느 정도 선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날 대회는 오전 10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10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2시간 동안 휘호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초등부, 중ㆍ고등부, 일반부(만18세 이상)로 나뉘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한문과 한글, 문인화 등 3개 부문에서 제시된 명제를 가지고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겨뤘다.
김기욱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7명의 심사위원들이 심사숙고 끝에 발표한 결과, 김범근(33ㆍ수원 영통)씨가 영예의 일반부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차지했으며, 부상으로 500만원을 받았다.
또한 중·고등부와 초등부에서는 김소진(춘천여중 3년)양과 임준형(풍천초교 5년)군이 대상으로 선정돼 상장과 함께 상금 150만원, 100만원을 각각받았다.
올해 대상을 받는 김범근씨는 “대구예술대학교 서예학과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생활 하면서 5번 정도 휘호대회에 참가했는데 대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석봉 한호선생 전국휘호대회는 다른 대회와 다르게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 등을 선보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나는 떡을 썰 터이니 너는 글을 쓰거라”…축하공연ㆍ이벤트마당 인기
올해 대회는 단순한 휘호대회를 뛰어넘어 축하공연과 이벤트마당이 마련돼 있어 대회 참가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물했다.
대회 참가자와 가족, 가평군민을 위해 ▲가래떡썰기 명인선발 ▲찾아가는 국악 및 민요공연 ▲석봉한호선생 OㆍX퀴즈 ▲보물찾기 등이 당일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특히 ‘가래떡썰기 명인대회’ 등을 펼쳐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대회는 참가 어머니에게는 옛날 가래떡 썰기 추억을 되살리고 자녀들에게는 전통 문화의 소중함과 가족간의 화합,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자리가 됐다. 5인1조로 경합을 벌일 대회는 시간내에 가장 예쁘고 많은 양의 떡을 썬 부모들에게 가평밤을 부상으로 선물했다.
이와 함께 작품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지루함을 달래고자 마련한 축하공연에서는 국악 혼성그룹 ‘두들쟁이 타래’가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두들쟁이 타래’의 공연은 사람들로 하여금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관객과 대화로 풀어가는 공연으로 한국무용, 판소리, 국악실내악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추억의 올드팝송부터 민요메들리, 국악창작곡 등 전통관현악 특유의 감미로운 선율을 선사했다.
이와 함께 일반부 참가자들은 참가비 2만원을 ‘가평사랑상품권’으로 전액 교환해 잣, 포도, 사과 등 신선한 가평 농특산물을 현지에서 구매하기도 했다. 전국 서예 애호가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행사였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평가.
조정현 가평문화원장은 “서예는 어릴 때 집중력 향상을 위해 배우는 교육방법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예술장르로 바라봐야 한다”며 “앞으로도 진일보하는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호 선생은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떡장수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크면서 종이가 없어 항아리 가랑잎 바윗돌 등에 손으로 물을 찍어 글 쓰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2013년 한호 선생같은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허나, 하얀 화선지에 스며드는 묵향의 깊이감에 취해 전국 서예 애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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