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선수의 승리가 전 국민을 흥분케 하던 지난 15일 오후 4시16분. 국내 한 통신사가 인터넷에 기사를 올렸다. 제목은 ‘다저스 팬의 간절한 노노노…류현진 냅둬’다.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팬이 직접 찍은 동영상이다. 7회 초 수비 때 다저스의 매팅리 감독이 마운드 위 류현진에게 천천히 걸어간다. 그때 동영상 속에서 절규에 가까운 한 남자 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 돼. 안 돼. 안돼. 매팅리 감독 안 돼. 왜 하필 지금이야. 류현진에게 마무리할 기회를 줘.” 류현진을 바꾸지 말라는 외침이다. ▶문제는 이 기사에 붙은 댓글 하나다. 한 네티즌이 ‘기자가 경기는커녕 동영상도 안 보고 썼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는 글을 올렸다. 이때부터 두어 시간 동안 300여개의 글이 이 댓글에 붙었다. ‘동영상 있네. 손모가지 내놔라’부터 ‘손
모가지 자르고 인증 샷 올려라’까지. 차라리 집단 폭력이었다. 그런데 그 중 아주 일부-물론 장본인을 포함해서-는 색다른 논리를 폈다. ‘제목만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기자들의 낚시질을 경계하자는 것인데 왜 취지를 왜곡하느냐’. ▶결국 최초 댓글이 삭제되면서-누가 삭제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고-논란은 가라앉았다. 이날 논란을 끝까지 지켜본 언론인 입장에선 여간 찜찜한 일이 아니다. 만성적 ‘낚시질 기사 제목 달기’가 빚어낸 언론 불신의 단적인 예(例)여서다. ‘영화배우 김태희, 결국엔…’ ‘대권 후보 김문수, 드디어…’라는 제목의 기사. 클릭해서 보면 ‘김태희, 여전히 예쁘다’라는 기사고, ‘김문수, 열심히 일하고 있다’라는 기사다. 종이신문(오프라인) 같았으면 당장에 징계(懲戒) 감이다. 하지만 조회수 경쟁이 이뤄지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언제부턴가 이런 걸 대세라며 보아 넘기고 있다. ▶20여 년 전, 머리숱이 하얗다 해서 후배들에게 ‘백 상사’라 불리던 편집기자가 있었다. 최고의 편집기자였던 그가 가르쳐 주던 좋은 제목의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제목에 쓰는 단어는 반드시 본문에 있는 단어여야 한다’다. 이런 원칙 따윈 배운 적도 없었을 ‘인터넷 제목 달기 아르바이트생’들. 그들은 오늘도 수많은 글에 ‘드디어…’, ‘결국…’, ‘마침내…’라는 엉뚱한 문구를 끼워 넣어 조회수 상승을 노리고 있다. 한국 언론 전체를 불신의 늪에 빠뜨리는 ‘양치기 소년’이라는 죄의식 따윈 없는 듯하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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