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원의 시대공감]27.파주문화원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 이야기’

파주의 ‘옛날 이야기 보따리’ 풀어놨더니… 아이들 눈망울이 반짝반짝

요즘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시대다. 그 뜻을 살펴보면 ‘story’와 ‘tell’과 ‘ring’의 합성어로 옥스포드 영어대사전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 단순히 이야기를 구성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꿈과 감성을 보다 적극적이고 강렬하게 설득하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선 수학을 공부할 때 수학적 정의와 공식, 문제 풀이보다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스토리텔링 수학’이 도입됐다. 이전엔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정의, 공식, 암기 계산능력을 중요시 했지만 새로운 교육 과장에서 강조하는 스토리텔링 수학은 창의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실생활에 적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스토리텔링의 경향을 대변하는 것이 지역문화유산이다. 지역문화유산과 스토리텔링의 만남은 새로운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화유산은 유·무형의 산물로 안전하게 관리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역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들이 발굴되고, 스토리텔링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파주문화원(원장 우관제)은 기나긴 생명력을 지닌 옛 이야기로 파주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 이야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찾아가는 문화교육 강좌’ 일환으로 2011년부터 3년째 운영 중

요즘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이전의 지역문화, 지역인물, 지역이야기를 잘 모른다. 관심분야가 아니면 알 방법이 없다. 어릴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옛날 얘기는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파주문화원이 어린이들에게 파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기 위해 운영 중인 ‘찾아가는 문화교육 강좌’는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과 파주시에서 지원하고 파주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문화교육 강좌’의 대표 브랜드,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이야기’는 스토리텔링 시대에 딱 맞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은 지난해 경기도 교육지원청 평생학습관 사업으로 확대, 운영 중이다.

올해까지 총 40여회에 걸쳐 관내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학교를 방문해 어린이들에게 파주 지역의 위인과 관련된 전설과 지명유래 등을 동화구현 형태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전통놀이 수업은 ‘덤’이다. 게다가, 2011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율곡문화제’에서 파주 관련 설화그림을 바탕으로 ‘이야기 그림전’도 개최해 왔다. 3년차를 맞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이야기’는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이야기’가 파주문화원의 대표사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할머니 스토리텔러의 힘이 컸다. 유진경(69)ㆍ윤영자(74) 어르신은 파주시노인복지관에서 4~5년간 동화구연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인형극 공연에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역 설화나 이야기를 각색하고 직접 수업자료까지 준비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열정적인 수업 매너로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파주가 고향인 유진경 어르신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키워주게 되고 평소 책읽기를 멀리하거나 지루해 했던 아이들에게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집중한다”며 “무엇보다 파주의 인물, 역사, 설화 등을 통해 파주 지역 아이들에게 애향심을 키워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며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윤영자 어르신은 “ 옛말과는 달리 요즘은 동화책이 홍수처럼 쏟아져 넘치는 시대지만 정작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시대이기도 하다”며 “특히 아파트에서 자란 어린이들의 경우 옛날 이야기를 통한 지역에 대한 이해, 그리고 파주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율곡 이이ㆍ방촌 황희ㆍ 문숙공 윤관 등 파주의 선현을 만나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파주는 통일 한국의 중심도시로 발전해가고 있다. 오랜 역사의 도시인만큼 큰 인물이 많이 고장이 바로 파주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청백리의 표상이자 명재상으로 알려진 방촌 황희(黃喜, 1363~1452), 고려시대 여진 정벌의 명장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 1040~1111),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조성 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 등 한국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위인들이 바로 파주와 함께 하고 있다.

10월 19일 오전, 파주시 운정초등학교 시청각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유진경ㆍ윤영자 어르신이 정감어린 목소리로 파주의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바쁘다.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10분까지 운정초교 2학년 어린이 137명은 율곡 이이 선생을 포함 파주의 대표적 선현인 방촌 황희 정승과 윤관 장군 ‘파주3현’의 이야기와 설화 등을 경청했다. 동화책을 통해 율곡 이이와 황희 정승에 대해 친숙하게 느낀 어린이들은 이야기를 듣는 중간 중간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고준희(운정초교 2학년 4반) 어린이는 “예쁜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들려준 황희 정승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다음에 또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원순 운정초등학교장 “운정초등학교는 한반도의 중심이자 세계 으뜸도시인 파주의 운정신도시에 올해 3월 1일 신설된 학교로 무엇보다 지역역사와 인물에 대한 교육이 중요해 파주문화원의 ‘찾아가는 문화교육 강좌’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 이야기를 신청하게 됐다”며 “어렸을 때 추억과 경험은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큰 자산이 될 것이며 우리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창의력과 미래에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개인들의 짧은 인생이 모여 큰 역사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조우하고 대화의 장이 확장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자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파주문화원은 이야기의 힘을 믿고 이야기를 통해 지역의 힘을 키우고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우관제 파주문화원장은 “옛이야기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일 때 비로소 제 구실을 다한다”며 “옛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무로서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어린이들에게 이야기의 교육적 가치를 생각하고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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