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동구 밖에까지 울려 퍼지는 청아한 다듬이 질 소리, 특히 온 누리가 멈춘 듯 조용한 시골 밤엔 그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세월이 가면 시류가 변하고 시류가 변하면 시속이 달라지고 시속이 달라지면 생활의 소리가 사라지는 게 있다.
예컨대 농촌 부락에서 벼 빻기의 선망이던 발동기, ‘퉁퉁’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그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다듬이 질 소리 또한 사라진 삶의 소리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청아하고 경쾌하게 들린 다듬이 질 소리는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니, 즉 한국 여인들의 숙명적 한(恨)이 괴어 있었다.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주 앉은 쌍방망이 질은 더 한다. 처음엔 입이 뽀루통했던 며느리도 이윽고 방망이 질이 끝 나갈 무렵에는 어머니 어쩌고 저쩌고하며 재잘거린다. 스트레스를 푼 다듬이 질은 마음의 약(藥)이었던 것이다.
여름에는 보기에도 시원한 모시로 두루마기까지 겨울에는 4촌까지 따듯하다는 식구들 명주 옷을 일일이 챙기는 아낙들의 그 많은 잔손질의 남 모른 수고로움을 남정네들은 짐작이나 했을까, 하염없는 세월은 그런 가운데 흘렀다. 전기 밥솥에 이어 나온 자동세탁기며 직물류 옷가지를 추방한 의류 혁명은 우리들 어머니 손에서 떠날 줄 모르던 다듬이 돌 홍두깨를 아련한 추억 속에 몰아넣어 저녁마다 듣곤 하던 그 소리를 영 듣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늘 따라 듣지 못할 그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은 어린 사내 아이가 어쩌다 다듬이 방망이를 들면 빨래 감이 행여 돌 맞을세라 하고 질겁을 하며 말리곤 하시던 어머니가 유난히 보고싶은 뼈저린 그리움은 생전의 불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임양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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