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수원지법의 경고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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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청사 내에서 취사와 야영, 숙박 등 행위, 시설물 훼손, 불법 시위, 기타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이를 어길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수원지법 정문에 내걸린 입간판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법원 청사 내 질서유지는 법치사회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당연한 내용이 경고문구로 내걸렸다. 그만큼 법원 청사 내외의 시위가 위험수위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흔들리는 수원지법 청사 주변의 상황이다. 이 의원이 구속되던 9월 초 10여일간, 수원지법은 보라색으로 포위당했다. 통진당원과 진보단체 회원들의 위력 과시였다. 이후 열린 공판 준비 기일 중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이 의원을 실은 호송차를 가로막아서고 고함이 오갔다. 이 일대 가로수와

신호등에는 현수막과 붉은색 풍선이 내걸렸다. 수원지법이 경고문구를 내건 7일에도 보수단체 회원 수십 명이 몰려왔다. ▶문제는 이들의 불법적 집단행동을 저지할 공권력이 없다는 점이다. 가로수와 신호등에 걸어놓은 현수막과 풍선은 모두 불법이다. 통상의 경우였다면 벌써 구청 단속차량이 들이닥쳐 거두어갈 일이다. 수백명이 모여 구호 외치는 행위도 사전 신고가 없다면 불법이다. 대표자는 물론 참가자 전원이 입건돼 조사를 받을 일이다. 하지만 수원지법 앞 불법 현장에는 단속에 나서야 할 수원시 행정도 없고, 처벌에 나서야 할 경찰 치안도 없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수원지법은 경찰에게 ‘법원 청사의 순찰 강화와 함께 불법 집회가 발생할 경우 단호히 대응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에 집중해야 할 법원이 경찰에 청사 질서 유지를 부탁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앞서 본보는 4일자 사설을 통해 경찰의 단호한 대처를 요구한 바 있다. 현장 질서 유지는 물론 필요할 경우 집회를 불허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답변이 없다. 법원이 나서 불법 집회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상황에 왔는데도 말이 없다. 그냥 두고 보겠다는 뜻인가. 특정 집단의 야유가 법원을 에워싸고, 무리 진 시위대가 재판부를 협박하는 이 상황을 그냥 지켜만 보겠다는 뜻인가. 앞으로 더 격렬해지고 대규모화할 시위. 지금 잡아 놓지 않으면 수원지법은 전쟁터로 변할 것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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