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안상돈 검사의 ‘을질’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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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수원지검 안상돈 1차장 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청사 계획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도와주십쇼. 기재부 인맥이 필요한데. (고등학교)인맥이 연결되시죠?”. 목소리가 워낙 다급해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쇼’라고 대답해 버렸다. 나흘 뒤인 28일, 다시 전화가 왔다. “잘 부탁합니다. 나는 (임기 끝나고) 떠나면 그만이에요. 하지만 지역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세 번째 전화는 지난 11일이었다. “다행히 재심의

에 들어갔다는데 지금이 중요합니다. 도와주세요.” 그리고 어제(13일) 다소 들뜬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됐습니다. 기재부에서 통과됐습니다. 고맙습니다. 밥 한 번 사겠습니다.” ▶수원 광교에 2017년 들어설 신(新)청사 면적을 두고 긴박하게 돌아갔던 수원지검의 한 달이다. 기재부가 세웠던 청사 계획은 연면적 3만3천여㎡에 지하 1층 지상 14층 규모다. 관할 인구수, 법원 청사와의 비율, 직원 1인당 면적 등 모든 면에서 문제 있는 계획이다. 개청과 동시에 ‘콩나물 청사’ 소리를 듣게 될 게 뻔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수원지검에 비상이 걸렸다. 기재부를 설득해 연면적을 넓혀야 했다. 연말 예산 확정을 앞두고 있어 시간도 많지 않았다. 모든 간부들이 기재부에 의견을 전달할 경로를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기재부 간부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필자가 안 차장 검사의 ‘망’에 걸려든 것이다. 경기일보도 대표이사가 직접 회의를 주재하며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사설과 기사를 통해 청사 계획의 부당성도 지적했다. 정치를 담당하는 국회 반장에게는 ‘아주 특별한 역할’이 주어졌다. 결국 모두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청사의 크기는 수원지검의 요구대로 9천여㎡ 커졌고, 사업비도 20%가량 증액됐다. 며칠만 늦었어도 개청과 동시에 증축 공사를 벌이는 황당한 상황이 빚어질 뻔했다. ▶‘갑질’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한 횡포다. 여기서의 힘이란 돈 또는 지위로부터 나오는 우월적 위치다. 좋든 싫든 검찰에게는 늘 갑질의 눈총이 숙명처럼 따라 붙는다. 이런 검찰에서 모처럼 목격하게된 ‘을질’ 이었다. 부탁하고, 매달리고, 찾아가고… 또 부탁하고, 또 매달리고, 또 찾아가고…. 안 차장의 말대로 그의 수원 근무는 1년이다. 내년 초면 또 다른 임지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지금 근무하는 경기도에서 경기도민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다녔던 한 달 여 간의 ‘을질’은 경기법조계에 오래 동안 남을 이야기 거리다. 수원지검 청사는 2017년 8월 어느날 문을 연다. 많은 이들이 가슴에 꽃을 달고 준공 테이프를 끊으려 자리를 하게 된다. 그날 자리의 한 귀퉁이를 그에게 내어주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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