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 디딤돌, 기부문화]3.미국의 민간 기부 문화를 주목하라

부유한 ‘후원회’ㆍ전문적 ‘이사회’… 촘촘한 ‘그물기부’ 돋보여

우리나라 문화예술기관이 적극 추진 중인 모금 사업의 벤치마킹(bench-marking) 대상인 유럽과 미국은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문화예술 부문의 재원 조성에 있어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국가 대부분이 공공의 역할을 강조했다면, 미국은 민간 부문이 활성화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문화예술 기관의 재원 확보 현황 및 모금 시스템을 살펴 우리나라의 개인과 민간단체 등의 열악한 민간 기부 활동 타개책을 찾아본다.

■전체 예산의 45% 가량 기부금…‘4W원칙’ 따른 모금 전문성 확보

미국은 민간 비영리 단체(Non-Profit Organizationㆍ이하 NPO)들이 재정 확보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종교와 의료, 복지 등의 NPO는 연간 예산 중 기부금이 10%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예술 부문 NPO의 경우 전체 예산 중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5%에 달한다. 해외 문화예술단체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일반적인 비영리 NPO와만 비교해도 기부금이 운영 예산 중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각 문화예술단체는 적극적인 모금캠페인을 벌여 전체 예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 및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반면 정부 지원금은 연간 예산의 5% 미만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자체 수입을 활용한다.

이는 미국의 대부분의 순수 예술 단체들이 정부가 아닌 부유한 개인 및 기업 후원으로 설립된 단체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설립해 민간 위탁 운영하는 시스템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는 출발선이 다르다. 때문에 지원금과 기부금의 예산 구성 비율이 크게 차이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이 기부금의 약 87%를 ‘개인기부자’로부터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발지점이 다르다 해도, 미국의 문화예술단체들이 전체 예산의 절반 가량을 기부금으로 확보하는 현실은 놀랍다. 개인기부 비율은 어마어마하다.

이를 가능케 한 힘은 미국의 각 문화예술단체마다 존재하는 ‘이사회’와 ‘후원회’다.

미국의 문화예술 NPO는 대개 이사회가 경영의 책임을 지는 법인 형태가 많은데, 수십 명의 이사진으로 구성한다.

이사는 일명 ‘4W원칙’에 따라 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재정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 ‘Wealth’, 재원 조성 전문가 ‘Work’, 기관과 고객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지역 인사 ‘Weight’,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경영ㆍ법률ㆍ회계ㆍ교육 전문가 ‘Wisdom’이 그것이다.

분야별 전문가와 매개자로 구성된 많은 이사진이 촘촘한 ‘기부그물’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문화예술단체 대부분이 제각각 후원회를 조직하고 시즌 정기 관람권 제도를 운영해 기부금과 자체 수입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스미소니언박물관, 사업 수입 못지 않게 기부금 비중 높아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 2’의 배경으로 등장해 더 친숙한 ‘스미소니언박물관’은 시작부터 기부금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대표 문화예술기관이다.

1846년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James Smithson)의 기부금으로 설립된 미국의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역사기술박물관, 국립항공우주박물관, 국립동물원 등을 비롯해 연구기관과 동물원, 도서관 등 복합박물관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입장료는 ‘무료’다. 2006~2008년 재정자립도는 24% 이상이다. 이처럼 입장료 수익이 없음에도 안정적인 재정자립도를 기록하는 기반인 수입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부금이다.

같은 기간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수입 중 10% 이상이 기부금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수입 중 2006년 프로그램지원 및 시설건설 기부금과 민간 보조금 수입이 약 12%, 2007년 약 14.4%, 2008년에는 11.7%를 각각 차지했다.

이는 ‘스미소니언 엔터프라이즈’를 통한 사업 수입을 비롯해 대관료, 수수료, 부동산임대수입 등 적극적인 자체 활동 수입이 전체 수입의 약 24%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꽤 높은 비중이다.

특히 수익시설 전문 운영 조직인 스미소니언 엔터프라이즈가 거둔 이윤이 전체 수입의 14%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기부금의 비중이 얼마나 더 큰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스미소니언 엔터프라이즈는 1990년대 잡지발행, 상점운영, 레스토랑 운영, 영화관 운영, 채널사업, 여행사업 등 다양한 수익사업을 위한 전문 운영조직으로 출발했다. 수익금은 매년 스미소니언박물관으로 귀속돼 수집품의 보존, 수집, 전시 및 연방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전시와 공공프로그램 지원금 등으로 사용한다.

기부 및 후원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인 것은 멤버십제도다. 스미소니언은 일반 멤버십과 스페셜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다. 스페셜 멤버십은 5단계로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후원금에 따라 각종 할인혜택, 무료 주차, 이벤트 초대 등 차등 혜택을 제공한다.

이 중 기업 후원 멤버십의 경우, 3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연중 각 기업과의 만남의 자리를 제공하고 각 기업의 이사진이나 직원들의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맞춤형 혜택을 마련한다.

이와 함께 40년 역사에 9만1천명의 후원자를 확보한 기부 프로그램 ‘James Smithson Society’를 운영 중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람객과 후원자 지원에 90% 의존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문화예술에 대한 ‘민간 기부’ 없이는 운영 자체가 어려워 보인다.

운영비용의 90% 가량을 관람객과 후원자들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사립문화예술기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총 수입 3천784억원 중 지정기금운용수입은 37%, 개인ㆍ기업ㆍ재단 등 기부금은 22%, 입장료 14%, 멤버십 11%, 문화상품과 편의시설 등 수입 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자금은 해당 건물을 소유한 뉴욕시가 건물 유지 비용으로 지원하는 11%가 전부다.

이는 설립부터 운영까지 철저하게 민간 주도로 이뤄졌기에 놀랄 일도 아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품 컬렉션은 미국 최대 규모인 330만점에 달하는데, 대부분의 소장품은 1872년 철도 사업가 존 테일러에 의한 작품 기증을 시작으로 개인 수집가가 기증한 것이고 일부는 여러 사람의 기부금으로 구입한 것이다.

1998년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설치 경비와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기금을 지원함에 따라 ‘한국관’을 개관, 민간 기부금을 적극 유치하는 미술관의 방침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이처럼 메트로폴리탄은 후원 및 민간 기부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전담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1875년 500명으로 시작한 멤버십 프로그램 담당 직원만 40명이다. 현재 137개국에 걸쳐 15개 등급의 회원 17만여명이 있다. 이 멤버십 회원비는 전체 예산의 11%나 차지한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후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담당직원도 45명이나 된다. 이들은 기업회원의 리셉션, 프라이빗 전시 관람, 모금 이벤트 등 특별한 행사를 기획 진행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의 전체 수입 중 기부 및 후원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만의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공연 예술 종합 기관인 ‘링컨 센터’는 2008년에 기부 수입이 19.5%를 기록했으며, 구겐하임박물관은 2007년에 39%를 차지했다.

이 같은 미국의 대표 문화예술기관 운영 현황을 토대로 우리나라와의 명확한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 대신 개인 또는 기업 후원으로 설립됐다는 국내 상황과 다른 출발선에 멤버십 및 후원 제도로 기부금 수입 비중을 높이기 위해 오랫동안 전문 부서를 두고 많은 전담 인력을 운영해 온 것이 그것이다.

점차 줄어드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예산 규모에 자구책을 찾는 국내 문화예술기관들에 미국의 안정적인 민간 기부 문화 정착을 이끈 다양한 제도와 조직, 시스템 등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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