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감독’ 김인식의 유머는 늘 듣는 이들을 푸근하게 한다. “한문으로 써 줬지. 그 애들은 한문 멋있어 하잖아”(외국 팬들이 사인 요청했을 때 어떻게 해줬느냐는 질문에). “나야 늘 how are you지”(일본 감독이 와서 인사를 건넬 때 뭐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그만들 찍어. 몇 장 주든지”(공항에서 사진 기자들이 몰려 한꺼번에 플래시를 터뜨리자). 그런 김인식이 정색하며 던졌던 말이 있다.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 2009년, 모두가 싫다던 대표팀 감독직을 떠맡으면서다. ▶프로야구는 국민 스포츠다.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가 있지만 ‘국민 스포츠’라고 당당히 불릴 수 있는 것은 프로야구다. 모름지기 ‘국민’이라는
단어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라붙는다. 남들에겐 다 허용되는 실수도 국민 가수에겐 용서되지 않는다. 남들에겐 그냥 넘어갈 일도 국민 배우가 하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다른 스포츠가 다 가는 길도 국민 스포츠 프로야구는 더듬어 보고 살펴보며 가야 한다. ▶지난 13일 롯데가 강민호(포수ㆍ28)를 붙잡는데 75억원을 썼다고 발표했다. 언론이 사상 최대 몸값이라며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이 발표가 있고 3, 4일 만에 또 다른 천문학적 계약들이 이어졌다. 한화가 SK 정근우(야수ㆍ31)를 70억원에, KIA 이용규(야수ㆍ28)를 67억원에 데려간다고 발표했다. 삼성도 장원삼(투수ㆍ30)을 눌러 앉히는데 60억원을 쓰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최고 몸값은 2004년 말 삼성이 홈런 타자 심정수와 계약한 60억원이다. 당시 여론은 비판적이었다. 무엇보다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지적이 컸다. 이후 FA 과열은 자제됐다. 그랬던 기록이 8년 만에, 그것도 네 명이 한꺼번에 윗자리로 올라섰다. 가히 ‘미친 몸값’이다. ▶프로야구 관중의 상당수가 젊다. 그 젊은 층의 실업률(청년 실업률)이 지난 7월 기준 10.5%로 2007년에 비해 1.7%p나 악화했다. 직장인들도 어렵다. 고작 5.2%(2012년 말ㆍ중소기업협회 조사)의 월급 인상을 위해 뜨거운 길바닥과 차가운 길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다. 여기에 돈 없어 급식비 삭제하고, 기초연금 줄이고, 지하철 공사 포기하는 나라의 곳간 사정도 심각하다. 하필 이럴 때 국민스포츠 프로야구계가 국민 약 올리듯 몸값을 질러대고 있다. 지켜보는 서민의 마음이 미칠 지경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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