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미술관에서
가을이 아직 문을 닫지 못하고 있는데 찬바람 휘몰아쳐 남아있는 낙엽마저 포화처럼 흩날린다. 11월의 회색빛 하늘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듯 공허하다. 마지막 잎을 떨궈 낸 나목은 파산선고를 받은 듯 차라리 홀가분해 보인다. 난로위에 양은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 끓는 소리를 듣고 싶다. 삶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있음이라는, 현재를 당겨 앉아 문밖의 가랑잎 구르는 소리를 들여놓아야겠다. 첼로소리 들리는 실내에서 국화차 한잔 마시며 그윽한 시 한편 가슴으로 흡입하고 싶은 만추. 좁은 골목 위 언덕에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환기미술관을 만났다. 그의 스케치작품들은 너무나 생생하여 숨결이 느껴진다. 3층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따라가며 외롭고 짧았던 현대회화의 거장 앞에 절로 숙연했다. 고향 신안섬마을의 뻐꾸기 소리를 화포에 심은 영혼, 김광섭의 시로 만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는 시가 그림이고 그림이 시인 예술의 농축이다. 언젠가 모든 떠나간 별들이 나의 이웃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이다.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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