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 디딤돌, 기부문화](完) 한국의 문화예술 기부 및 모금을 위한 제언

안정적인 재정확보 과제… ‘모금 전문가’ 키워 기부문화 업그레이드

미국의 한 갤러리의 모금 책자에는 ‘예술은 그 사회가 본질을 추구하는 힘을 공급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 갤러리에 기부를 하는 것은 예술을 통해 사회가 본질을 추구하는 힘을 강화하도록 돕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단체가 모금활동을 하는 과정은 사람들의 가슴에 문화예술을 심어가는 일종의 ‘예술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문화예술단체들 사이에서도 모금에 대한 관심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재원조성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다”, “모금이 중요하다” 등의 모금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국에 문화예술단체들의 모금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문화예술단체의 모금은 예술가들의 강한 자아와 극소수의 관심층이란 제약된 환경 때문에 전문 펀드레이저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난항을 겪고 있는 분야다. 더욱이,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이 줄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재정확보를 위한 문화예술 단체의 전문 펀드관련 전략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더욱더 절실히 강조되고 있다.

■ 모금은 사회를 교육하는 과정이자 일종의 ‘친구 맺기’

문화예술단체가 열악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재원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다. 재원 확보의 핵심은 ‘모금’이다. 한국에서의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모금 확대는 ‘정부 지원을 대신할 모금’이 아니라 ‘견고한 정부지원 위에 플러스알파로 늘어날 모금’이 되어야 한다.

모금은 사회를 교육하는 과정이다. 모금하는 과정은 넓게는 사회 전반, 좁게는 기부자를 교육하는 효과를 가진다. 모금과정을 통해서 기부자들은 문화예술단체 속에 내재돼 있는 여러 가지 가치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기부자들에게 새로운 통찰력과 학습의 기회, 그리고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자연환경 이슈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하는 일상의 습관들을 체득하게 되고, 인권단체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인권이슈에 민감하게 되어 생활 속에서 인권을 존중하는 삶에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또 모금은 기부자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기부자의 돈을 노리는, 돈이 이동되는 순간 모든 거래가 끝나는 과정이 아니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친구가 되는 것은 때론 나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모금에서는 20:80의 원칙이 적용된다. 즉 숫자로는 상위 20%의 기부자가 통상 금액으로는 80%를 이상을 기부한다는 것이다. 통계학적인 파레토가 제반 사회현상을 분석하며 이론화시켜 유명해진 이 ‘파레토 법칙’은 모금기관의 전략에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숫자 상으로 20%에 불과하지만 금액으로는 80% 이상을 차지하는 거액기부자들을 위한 모금기술인 거액모금기술은, 숫자 상으론 80% 이상을 차지하지만 금액으로는 20% 미만을 형성하는 다수의 소액기부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대중모금기술과 질적인 차이를 있다.

문화예술단체는 이 두 가지 범주에 속하는 기부자들을 골고루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중요하다. 모금의 효율적인 측면에선 거액모금 기술이 효과적이지만 대중모금기술은 사회 일반과 미래의 거액기부자들에 대한 투자라는 측면을 갖는다. 문화예술단체는 하나의 날개로는 높이높이 멀이 날 수 없다.

■ 모금은 전문적인 기술… 전문 모금가를 위한 교육ㆍ훈련 절실

모금의 기술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문화 속에서 발전해왔다. 특히 1800년대 중후반 영국와 미국의 활발한 자선적 에너지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모금 기술의 기초가 형성됐다. 그리고 지난 20세기는 이 기술이 다양한 옷을 입고 진화하고 변신해 왔다. 최근엔 전문가들이 “문화예술 단체에도 모금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인다.

흔히들 ‘펀드레이저(fundraiser)’라고 하면 단순히 돈을 끌어다모으는 사람 정도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사용될 기금의 목적과 필요한 자금 규모를 분석해 개인과 단체의 기부활동을 독려하고 기부가 이뤄지도록 기획하는 직업 또는 관련 전문가’를 일컫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기부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자선단체나 개발NGO를 비롯 공공기관과 문화예술단체, 대학, 병원,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전문적인 펀드레이저를 고용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펀드레이징 시스템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기부 선진국인 미국 내 펀드레이저는 대략 10만 명이 활동 중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전문적인 펀드레이저의 중요성을 깨닫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단계다.

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자아실현을 위한 모금활동가가 대부분인 반면 아직 한국은 생계형 모금가가 훨씬 많다. 그래서 전문 모금가를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제 모금에 대한 시각을 기부자에게서 모금가로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 인식전환 필요

실질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사회적 지원과 나눔을 확대하고 활성화하기 위해선 복지 영역과 차별화된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일반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아직 일반적인 인식에서는 사회복지 분야의 시급성은 받아들여지지만 기부와 사회공헌, 나눔활동에 있어서 여타 분야는 상대적으로 중요성과 시급성이 후순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궁긍적으로는 이런 인식을 변화시켜 사회적으로 기부와 나눔을 하는 데 있어서 특정한 분야가 우선하고 여타 분야는 중요하거나 시급하지 않다는 인식이 아니라, 개개의 영역이 각자의 고유한 필요성과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필요성과 의의로부터 기부와 나눔의 논리와 명분, 동기가 발생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 문화예술이 한국의 경쟁력을 촉진시킨다는 홍보와 함께 일반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좀 더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문화예술이 기업이나 특수층에만 제한된다는 거부의 인식을 없애는 것이 문화예술단체들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기부는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기부는 남의 것을 빼앗아서 내가 가진 것을 불리는 산술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은 1등과 꼴등이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영역이다. 절대 우선 순위에서 밀려도 되는 그런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문화예술은 개인과 기업, 그리고 사회가 다함께 살려야 하는 나라의 심장이다. 우리는 나라의 심장을 팔딱팔딱 뛰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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