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송영길의 신(新) 진보 정신, 답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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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늙어가고, 늙은이는 죽어간다.’ ‘그’가 이 말을 한 게 20세기 초다. 혁명의 사조가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변해갈 수밖에 없는 혁명의 미래를 예언한 말이다. 실제로 혁명은 변해갔다.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혁명가들은 무대에서 사라졌다. 때론 유배지에서 때론 망명지에서 사라졌다. 스스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기도 했고, 게페우 요원이 휘두른 피켈에 정수리를 맞기도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혁명은 변해갔고, 변치 못한 혁명은 죽어갔다.

대선 다 다음날인 2012년 12월 21일. ‘실버 보트(Vote)/진보 위기’라는 제목의 소(小)칼럼을 썼다. ‘… 2002년 20ㆍ30대의 비중은 48.3%였는데 2012년에는 10%p 줄어든 38.3%다.

당당하고 분명한 변화

반면에 50ㆍ60대의 비중은 29.3%에서 40%로 늘었다… 대선 투표율은 75.8%는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운 투표율이다… 그런데도 늘어난 50ㆍ60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18대 대선은 앞으로 십수년간 이어질 장년층 지배 선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

충격에 빠졌을 진보를 배려한 표현이었다. 1년 뒤인 지금 그 칼럼의 교열(校閱)을 본다면 이렇게 고칠 것이다. ‘이번 18대 대선은 진보가 그나마 비슷한 성적이라도 올릴 수 있었던 마지막 선거다. 장년층 표가 장악해버린 대한민국에서 진보가 대통령 선거를 이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그때나 지금이나 이 소견엔 변함이 없다. 18대 대선은 표에서 진 것이고 그 표는 왕창 늘어 버린 장ㆍ노년층 표였다.

이후 진보에 주어진 생존의 길은 하나다. 진보를 배반하고 보수 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때 했던 이 말을 요즘서야 자주 듣게 된다. 이른바 민주당 발 ‘중원 싸움’이다. 북한 인권을 말하기 시작했고, 햇볕 정책의 수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당 대표 연설 직후 민주당이 찾은 첫 방문지도 분단의 땅 연평도였다. 그런데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 인권의 내용을 두고도 말이 많고, 감히 햇볕 정책을 건드릴 수 있느냐는 비난도 있다.

이것 말고는 이길 방도가 없는데도 이런다. ‘50대 투표율 89.9%’의 1년전 충격을 잊은 모양이다.

이런 때, 눈에 확 들어온 인터뷰 기사가 배달됐다. 조선일보 22일자 8면에 보도된 ‘송영길 인천시장에게 듣는다’다. “부자들 돈을 털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일지매ㆍ임꺽정 리더십이 아니라… 목화씨로 솜을 만든 문익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자 감세를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늘어지는 당을 향한 일침이다. “진보도 성장을 이야기해야 한다. 모두가 분배만 이야기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또다시 복지를 만지작거리는 진보를 향한 충고다.

진보 정당과의 차별화에 대해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대선 TV 토론 때 문재인 후보가 ‘남쪽 정부’라고 말하던 통진당 이정희 대표에게 왜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못했나… 우리 해군을 해적이라고 말하는 세력과 단호하게 선을 긋지도 못했다.” 종북 세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야기된 지금도 여전히 야권 연대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는 민주당을 향한 고언(苦言)이다. 그의 얘기는 인터뷰 내내 이렇게 당당하고 분명했다.

그래도 그는 진보주의자다. 보수 쪽 눈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 나라를 어지럽게 했던 ‘투사’일뿐이다. 그가 이념의 경계를 넘어 투항해 온 들 따뜻하게 받아줄 대한민국 보수도 아니다. 그런데도 시원했다. ‘돈 있어야 복지가 있다’는 현실감, ‘해군은 해적이 아니다’라는 국가관, ‘부자는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경제관이 읽는 이들을 후련하게 했다. 이 뻔한 고백을 진보로부터 듣고 싶어 숱한 국민들이 이념의 중간지대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진보가 이길 유일한 길

선거가 4개월여 남았다. 특히나 송 시장의 얘기를 들어야 할 진보들이 있다. 종북 진보와의 연을 끊을지 말지 고민하는 진보, 품 안엔 30년전 고서(古書)를 숨겨놓고 말로만 변화를 얘기하는 진보, 하나 되는 사회로 가자며 갈등의 부스러기로 배 채우려는 진보…. 모두가 송영길式 진보정신을 배워야 한다. 그게 싫은 진보에게 남는 건 노화(老化)된 선거판에서 끝 모를 심연(深淵)으로 추락하는 것뿐이다. 송 시장의 인터뷰 행간마다 눅눅히 배어 있는 메시지도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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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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