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 작가는 작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했을 때 그의 그림의 대다수는 에이포(A4) 용지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드로잉’이라고 말합니다. 작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림의 크기와 상관없이 ‘회화’와 ‘드로잉’은 엄연히 그 뜻이 다릅니다. 넓게 생각해서 드로잉은 회화의 한 분야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두 회화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드로잉의 개념에는 반드시 ‘색의 부재(不在)’가 포함됩니다. 색칠하지 않은 그림이나 소묘, 데생이 드로잉인 셈이지요.
작가는 2010년 5월에 기획된 경기도미술관의 <경기도의 힘> 전에 다섯 개의 연작 작품 <제목없음(無題)> 을 내놓았습니다. 연작이라고는 하나 특정 주제의 연작 작품이라기보다는 자유롭게 상상한 이미지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목없음’은 반어적인 말이에요. 작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상상력으로 이 작품들을 보라고 하는 것이니까요. 나는 그 중에서 ‘맙시다’가 적힌 작은 그림 하나를 보고 있습니다. 제목없음(無題)> 경기도의>
그림은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그 단순함에 김태헌의 미학적 힘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그림에 단 2~3개 정도의 이미지를 몽타주할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둘 셋의 이미지는 다시 주이미지와 보조이미지로 나뉩니다. 주이미지가 그 그림의 상징어로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미학적 발언을 담고 있다면, 보조이미지는 대체로 문자언어?실사이미지?기호?오브제 등 필요에 따라 사용합니다. 보조이미지는 주이미지의 상징성을 받쳐주는 ‘리얼리티(reality)’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맙시다’가 적힌 작품도 다르지 않습니다. 화면은 권투 글러브를 낀 주먹이 날아가는 장면입니다. 작가는 속도감을 느끼도록 만화적 동선을 사용했습니다. 한마디로 누군가가 지금 ‘휙!’하고 강력 펀치를 날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주먹 밑에 흰 바탕을 칠하고 ‘맙시다’를 썼어요. 또 오른쪽 아래에는 신호등머리를 한 픽토그램 인물이 서 있어요. 빨강노랑파랑 머리의 이것은 일종의 ‘경고’라고 봐야 할 듯해요. 빨강을 맨 위에 올렸으니 ‘멈춰!’라는 뜻일 테고요.
싸우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때리지 말라는 뜻도 될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링 위의 게임일지라도 폭력은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3월 1일에 발생한 중국 쿤밍테러를 떠올립니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를 봅니다. 인류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과 전쟁은 가장 위험한 범죄입니다. 쿤밍의 희생자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