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의 침묵이 수 초간 흘렀다. 조용한 미소 속엔 반대의 뜻이 역력했다. 그래도 설득은 계속됐다. ‘무상급식은 부잣집 애들한테 돈 쓰자는 거다’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뒤로 가지 못한다’ ‘그 돈이 어디서 난다는 건지 설명이 없다’…. 주로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확실히 기억나는 말은 이거다. ‘출입처가 부담되면 안해도 돼!’ 듣고 있던 이 기자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작정한 듯 말하고 국장실을 나갔다.
2009년 늦은 가을의 일이다. 아직 ‘무상급식’은 경기도만의 화두에 머물러 있었다. 그 무상급식과의 전면전을 기획하는 자리였다. 무상급식의 창시자는 김상곤 교육감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그 이론의 본산지다.
무상버스 평가는 여론 몫
그곳의 출입담당이 이 기자였다. 당연히 그의 동의가 필요했다. 출입처에서 겪게 될 고난이 클 수 있어서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홀로 밥 먹는 이 기자와 항의 전화에 시달리는 이 기자를 자주 보게 됐다.
명분은 당당했고 거창하기까지 했다. 무상급식의 허구를 논리로 지적해내자는 대의(大義)가 있었다. 무상급식 예산 1천200억원이 가져올 파국을 얘기했다. 예산 돌려막기의 끝을 경고했다. 정치로 번져갈 무상복지의 전염성도 경계했다. 그 후 무상복지를 비난하는 논리-부자복지, 예산파행, 포퓰리즘 등- 대부분이 그때 활자화됐다. 그러던 작업이 멈춰 선 것은 보수조차 ‘무상’을 베껴 쓰기 시작한 2010년 6월에 와서다.
여론이 무섭게 돌아섰다. 당장 얻게 될 ‘월 5만원’ 앞에 중심을 잃었다. 한나라당 후보들도 무상급식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무상급식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비난하던 사람들이다. 2009년 늦은 가을에서 2010년 6월에 이르는 7개월. 그 7개월은 그렇게 빠져나가는 여론의 썰물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봐야 했던 시간이다. ‘이 기자’와 함께 했던 무상급식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역사 속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패배다.
얻은 건 두 가지다. ‘정치 의제의 결론은 이론이 아니라 표가 내린다’는 교훈이 하나고, ‘잘못된 지시가 후배 기자의 일상을 날렸다’는 미안함이 다른 하나다.
그랬던 ‘무상’이 또 등장했다. 이번에도 김상곤 교육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살펴 복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없애고, 위기에 처한 분들의 삶을 절망에서 구출하겠다”면서 버스완전공영제를 통한 무상대중교통 실현을 약속했다. 이번에도 대중은 수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실현성의 문제도 따지지 않았다. 12일 오전 발표문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무상버스’가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데 두세 시간이면 충분했다.
아주 낯익은 비난이 쏟아진다. ‘비현실적이다’ ‘포퓰리즘이다’ ‘무책임하다’…. 5년 전 ‘이 기자’와 함께 써내려 가던 논리다. 거기에서 ‘급식’이 ‘버스’로 바뀌었고, ‘1천200억원’이 ‘1조5천억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밟히면서 성장하는 특유의 생명력도 똑같다. 정치권과 언론의 비난이 이어지지만 덩달아 검색어 상위 랭크도 이어지고 있다. 터지자마자 선거판을 장악했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도지사 선거판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달라진 게 있긴 하다. 칼끝을 돌려 잡은 과거의 우군(友軍)들이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부담해야 할 재정이 연간 1조5천억원이다. 공감대를 얻을 수 없는 논란거리로 전락했다”며 비난했다. 같은 당 김진표 의원도 “세금이 늘 수밖에 없다. 법률적으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어떤 민주당 시(市)의 관계자는 “그렇게 되면 시는 무상버스 외에 아무것도 못한다”며 “막아 달라”고까지 한다. 다들 5년 전 응원군인데…. 뭔가 문제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다 부질없는 논란이다. 무상버스의 옳고 그름은 논리로 결판나지 않는다. 여론이 어느 쪽으로 움직여 가느냐에 달렸다. 지지받으면 위대한 복지 공약이 되는 것이고, 외면당하면 무리한 선심 공약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여론은 대체로 이성적 냉철함보다는 공짜의 달콤함에 더 쉽게 반응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런게 다 5년 전 ‘무상급식 패배’에서 얻은 교훈이다.
세 모녀의 공과금 70만원
그래서 이제는 그냥 지켜 보고 있다. 무상버스에 대한 여론조사나 찾아보려 기웃거리고 있다. 공짜에 길들여진 표심이 보편적 복지 반대론자에게 강요하고 있는 부끄럽고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 모녀가 자살했다. 팔을 다쳐 식당 일을 그만둔 엄마, 당뇨병으로 생활력을 잃은 큰 딸, 아르바이트 임금을 못 받은 작은 딸. 이런 세 모녀가 먹고살 길이 없어 자살했다. 팔 부러진 그 며칠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나라다. 돈 없는 당뇨환자에게 인슐린 하나도 놓아주지 못하는 나라다. 시급(時給) 착취를 당한 아이에게 보상도 해주지 못하는 나라다. 이게 보편적 복지를 외치면서 선택적 복지조차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세 모녀는 그런 대한민국에 내야 할 마지막 공과금(公課金)이라며 목숨만큼 중했을지 모를 70만원을 남겨놓고 죽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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