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박은태의 ‘발’

3월에는 24절기 중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이 있습니다. 경칩은 3월 6일이었고 춘분은 지난 주 금요일이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경칩이 되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라고 생각했지요.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니 봄의 첫 손님이 아닐는지요. 그런 다음 춘분은 드디어 밤이 짧아지면서 낮이 길어지는 시기랍니다. 그러니 이제 곧 4월이면 봄꽃이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며 또한 농사일이 시작될 것입니다.

예부터 3월에는 영등할머니, 볏가릿대 허물기, 머슴날, 콩볶기, 좀생이 보기와 같은 세시풍속이 있었습니다. 그 중 영등할망이라고도 부르는 영등할머니는 영남지방과 해안지방에서 섬기는 바람신(風神)이에요. 세시풍속이 많이 잊혀서 영등할망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도 제주에서는 영등할망 이야기를 많이 한답니다.

음력 2월 초 하룻날이 되면 제주도에 영등할망이 들어와 바닷가를 돌면서 해녀들이 채취하는 다양한 해산물의 씨를 뿌리고 다닌다고 해요. 씨를 뿌려서 바다와 땅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는 것이죠. 그러다가 2월 25일이 되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영등할망이 돌아가고 난 뒤에야 청명(淸明)이 와요. 봄 농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죠.

박은태의 ‘발’을 천천히 봅니다. 붉고 붉은 발의 육체를 봅니다. 뭉툭 삐어져 나온 골격과 한쪽으로 휘어서 빈틈없이 달라붙은 발가락도 봅니다. 저 발에서 세월의 긴 두께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저 발이 황토빛깔을 닮았다는 것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저 발을 발의 지도라고 생각해 봅니다. 발의 대지라 부르는 것이 적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발의 대지 위에서 어머니는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기를 쉬지 않았을 것입니다. 24절기를 굳이 외우고 배우서 터득하지 않더라도 이미 몸이 알아서 움직였을 터이니, 어머니는 곧 밭으로 논으로 나갈 때를 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아마도 벌써 봄나물을 캐러 산과 들로 나가셨을지 모르겠어요.

발은 오래된 대지처럼 낮은 산과 계곡, 드넓은 대지와 두렁이 펼쳐져 있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 발의 육체는 완전히 그렇게 대지와 한 몸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머니는 저 발의 대지입니다. 그러니 어머니야말로 영등할망일 거에요. 봄바람은 그러므로 어머니에게서 시작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봄바람 봄 처녀를 떠올립니다. 새싹의 환희와 싱그러움이 느껴집니다. 봄 처녀는 어머니요 영등할망입니다. 영등할망의 신화는 그렇게 생명의 대순환과 탄생했을 터입니다. 봄바람이 불 때는 불을 경계하여 생명 움틈의 순간을 조용히 지켜볼 일입니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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