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방사탑을 닮은 거대한 산… 제주를 지키다

다시, 제주도로 가 볼까 합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제주에서도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그 곳에 서면 바다와 너른 들, 그리고 우뚝 솟은 산방산이 눈에 들지요. 바다냄새, 흙냄새, 산 내음이 코끝에서 물씬거립니다. 그런데 주변을 좀 더 세심하게 살피면 무언가 다른 이물질이 들어와요. 본래 그 풍경에 속하지 않았던 것들이 움씬 끼어들어 풍경을 망치고 있는 게지요.

1945년 봄, 일본 제국주의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결7호 작전’을 제주에서 전개합니다. 일본 본토 방어 작전으로 말이죠. 그 해 2월부터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이 대상지였고, 그 일본 외 지역이 바로 제주도였죠.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제58군을 비롯해서 총 7만5천여 명이 투입되어서 진지를 구축했어요. 송악산 아래 해안절벽에는 그들이 진지로 뚫어놓은 시커먼 동굴들이 흉하게 남아있답니다.

그리고 산 뒤쪽으로 알뜨르 비행장이 있지요. 1926년부터 1936년까지 20만평을 닦았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는 80만평으로 키웠어요. 이곳에 2천500명의 군사와 25대의 전투기를 배치했지요. 그 잔혹한 가미가제 조종사들의 훈련이 이곳에 실시되었고요. 바로 그곳에 뻥 뚫린 터널인양 무덤인양 격납고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서 풍경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 알뜨르에서 다시 우리는 낮은 봉우리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백조일손지묘(白祖一孫之墓)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아마도 이런 말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말이라도 처음 들었을 게 분명합니다. 백조일손(百祖一孫)은 ‘백 명의 조상에 한 명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뜻이 의아하죠? 1948년 4·3사건이 터진 뒤에도 사건은 쉬지 않고 이어졌답니다. 게다가 6·25한국전쟁이 터지기도 했잖아요.

전쟁 통에 이 근방 대정과 한림 일대에서 예비검속으로 붙잡힌 사람들이 193명이에요. 모두 학살되었고 그 중 132명은 7년이 지난 뒤에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죠. 그런데 한꺼번에 매장되었기에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가 없었죠. 후손들은 그 분들 모두를 조상으로 섬기기로 하고 묘를 썼답니다.

그림 속 높다란 산이 산방산이에요. 그 아래에는 누구의 무덤인지 모를 백 개의 무덤이 있고요.

작가는 왜 저토록 붉은 산방산의 위용을 그려야 했던 것일까요? 보세요. 저것은 마치 방사탑(防邪塔)을 닮지 않았나요? 제주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서 또는 불길한 징조가 보이거나 기운이 허하다고 믿는 곳에 액운을 막으려고 돌탑을 세웠다고 해요.

그렇다면 저 산방산은 백 개의 영혼이 일으켜 세운 거대한 방사탑에 다름 아닐 거에요. 나는 저 숭고한 영혼들이 지금 제주를 수호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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