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간다고 신바람 나게 집을 나서더니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 왔구나. 이 어인 날벼락인가. 날벼락도 유분수지 떼죽음이라니 어른들 잘못이 크다 해도 너무 크다. 불과 174명 구조에다 사망 105명에 실종자가 무려 197명(22일 정오 현재). 이 가운데는 교사나 여승무원 등도 있지만 대부분이 학생인 청소년들 아닌가. 부모의 여망 속에 자란 앞길이 구만리같은 젊은 나이가 너무도 아깝구나.
흔히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지만 다 키운 생떼같은 아들 딸을 일시에 잃은 부모들은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정신이 몽롱해 졸도를 하는구나. 차디찬 짠물을 들이켜야 했던 죽음을 억울해서 어찌 맞이할 수 있었더란 말인가. 처음엔 마냥 슬퍼하다가 원통한 생각이 들더니 이젠 분한 마음이 드는구나.
실종자 수가 줄어 사망자 수가 늘어날 때마다 허탈해지는 무력감을 감추지 못하겠다. 결과론이지만 구조작업은 조난자의 생환이 구조이지 시신 인양이 구조의 정수일 수는 없다. 그러나 생환을 비는 촛불기원에 오늘도 불을 밝히는 것은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차마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고 또 있을 수 없는 사고가 생긴데 대해 고인이나 유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로는 안 되는 게 그런 말로 용서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 나라 안이 아직도 침통한 것은 굳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각계각층 자의다.
사회 전반이 자발적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전무 후무할 현상이다. 개학을 해도 전 2학년 학생반이 텅 빌 것 같아 이를 우려치 않을 수 없다. 비어 있는 책상 걸상은 지금도 그대로인데 주인은 도대체 어디 갔단 말인가. 용서로 해결될 불상사가 아니고 또 용서 할 수 없을지라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임양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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