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을 최초로 신고한 사람은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인 고(故) 최덕하 군이다. 그는 침몰 당일인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고 알렸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것이다.
해경은 최 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에서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최 군은 수많은 승객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자신을 희생해가며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의로운 이들이 여럿 있다. 단원고 정차웅 군은 자신이 입고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줬다. 검도 3단의 유단자로 체육학도의 꿈을 키우던 정 군은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희생됐다.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는 배가 침몰하자 “승무원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너희를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걱정하는 학생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대홍 사무장은 아내와 전화통화에서 “수협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큰아들 학비 내라.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모두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의인들이다. 포털사이트와 SNS에선 ‘잊어선 안될 세월호 의인들’에 대해 국가가 의사자 지정을 해야한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청원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인천시도 고 김기웅ㆍ정현선 연인에 대한 의사자 인정을 보건복지부에 청구했다. 세월호 아르바이트생과 승무원으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이들은, 탈출을 마다하고 승객들을 구하려 기울어지는 선내에 진입했다가 변을 당했다.
의사자 지원제도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을 구하다가 숨진 사람이나 그 유족을 지원하는 제도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에게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ㆍ취업 보호 등의 예우가 주어진다.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이 가능하다.
살신성인으로 많은 목숨을 살려낸 세월호 의인에 대한 의사자 인정은 당연하다. 이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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