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혜석 선생을 아시나요? 여성으로서는 근대 최초의 서양화가였고 여성주의 문학의 이정표를 세웠으며, 삶 자체가 근대 신여성의 효시였던 나혜석을. 그분의 삶과 예술을 톺아보면 그가 얼마나 혁명적인 실천가요, 예술가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분이 태어나신 곳은 경기도 수원이었고 태어난 날은 바로 이즈음, 그러니까 1896년 4월 28일의 일이었습니다. 저 붉은 그림의 여성이 바로 나혜석 선생의 초상입니다.
작가 정정엽은 이 작품의 제목에 ‘이상하외다’라고 달았군요. 이상하죠? 작품 제목이 ‘이상하외다’라니. 이 제목은 나혜석 선생의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1934년 남편 김우영과 이혼하게 되는데 이 이혼의 경위를 적나라하게 밝힌 ‘이혼고백서’라는 글을 『삼천리』라는 잡지에 게재하게 되지요. 그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라고요.
글의 후미는 더 압권이에요. 남성의 욕망을 따져 묻고 비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여성해방을 당당히 주창하기 때문이죠.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선생은 김우영과 결혼 할 때는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 줄 것’과 심지어는 ‘첫사랑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요. 이런 당당함은 그대로 선생의 그림과 문학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습니다. 정정엽 작가가 지금 이 시대로 호명한 나혜석 선생의 얼굴은 그렇다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림은 선생의 얼굴과 선생이 그린 자신의 초상이 반반씩 섞였고, 머리 위로 필름과 꽃과 컴퍼스와 그리고 어떤 에너지의 아우라가 뒤섞여 있습니다. 그림은 마치 선생은 갔으나 선생이 꿈꾸었던 세계는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혼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필름은 이어지듯이 여성주의 그룹 입김의 작가로서 정정엽은 나혜석에서 이어지는 정신을 보는 듯 합니다. 흰 물감 덩이를 흩뿌려서 환한 빛으로 표현한 저 밝음을 보세요.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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