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자연스레 ‘애도’ 표출하도록 도와주세요

‘세월호 트라우마’ 치유 어떻게 할까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22일이 지났다. 그 사이 봄은 실종됐다. 대신 차디찬 겨울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이라도 된 듯 모두가 슬퍼했다. 우울과 불안, 절망, 무기력, 분노가 4월과 5월을 수식했다. 세월호 사고의 피해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에 빠지는 동안, 다수의 국민도 ‘대리 외상’에 빠졌다.

국가는 황급히 안산에 ‘트라우마센터’를 건립하고, 직ㆍ간적접인 피해자는 물론 일반 시민에게까지 치료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적절한 스트레스 대처법과 고통스러워 하는 주변 사람을 돕는 방법을 담은 안내서를 최근 발표했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 충격적인 사건과 마주한 ‘나’를 위해

정신적 충격에서 회복된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을 잊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회상했을 때 더 이상 감정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진짜 ‘회복’은 덜 괴로운 상태가 되는 것, 그리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우선, 전문가들은 사건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상실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자신 앞에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떠나보내는 과정. 우리는 그것을 ‘애도’라 부른다.

충분한 휴식과 일상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도 중요하다. 상실된 삶 속에서 사치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의 나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 일상을 되찾고 그 속에서 나에 대한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

주변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 혹여나 끔찍한 사건의 기억이 튀어나올까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직면해야 한다. 고독도 애도의 방법이나 지나친 고독은 외로움과 고립감 등 부정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끔찍한 기분을 자연스레 토로하는 것도 치유의 한 과정이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의 정보습득은 필요한 부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재난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은 피해야 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언론 보도는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킨다. 당분간 대중매체와 인터넷 사용을 중단하는 것도 좋다.

■ 고통을 경험한 친구와 가족을 위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후 많은 이들은 고통과 슬픔, 자책감과 분노 등의 감정에 빠진다. 이를 극복하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요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에게나 ‘치유의 힘’이 있다. 이 시기 가족과 친구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가장 먼저는 당사자에게 사건을 인식시키는 일이다. 당사자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주변인들은 당사자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을 내어줘야 한다. 가령, 주변인이 당사자들의 일이나 육아를 돕는다는 그들은 문제해결을 위한 시간을 갖는데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얻게 된다.

또 회복을 위한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해줘야 한다. 무엇이 나아졌는지 알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사소한 것일 지라도 그들이 회복하기 위해 한 행동과 결과를 인정하고 응원해줘야 한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화에서 ‘공감’은 중요하다. 하지만 피해야할 말도 있다.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 때때로 주변인들은 ‘강박’에 빠진다. ‘옳은 말, 좋을 말을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

그러다가 대화는 막연함으로 흐른다. 예를 들어 ‘난 네가 어떤 느낌인지 알어’, ‘괜찮을 거야’, ‘너 정말 힘들겠구나’, ‘이런 일을 견디어 내기란 쉽지 않아’ 등의 기계적 언어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적절히 반응하고, 맞장구를 치며 그들의 아픔에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긍정’과 ‘인정’은 상대방을 계속 이야기하게 한다.

■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위해

아이들이 경험하는 사고의 충격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첫 번째 시련일 수 있다. 아이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약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스스로를 억압할 수 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억압된 감정이 표출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보살핌 받고 있다고 안심시켜 줘야 한다.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줄어든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에게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유지한다.

취침 할 때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은 잠을 이루기 힘들다. 하지만 숙면은 긴장을 이완시키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명약이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애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애도반응을 숨기거나 억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겪어나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 슬픔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 하자.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해주고, 부모가 같이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행동에도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거나 평소에 좋아했던 일을 하기, 맛있는 음식 먹기 등을 하도록 한다. 생존한 사람은 다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친구의 죽음에도 즐거운 일을 하면서 기쁜 마음이 드는 것은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일을 아님을 인지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애도시기 ‘나’ 자신을 위해

세월호 사고의 범주는 대한민국 전체를 포괄한다. 우리가 목격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부재’다. 돈 벌기 급급한 선주와 제 살길 찾기 바쁜 선원, 우왕좌왕 했던 해경과 구조대가 그러했다. 그 사이 세월호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국민의 마음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22일간의 130만 명의 조문객이 전국 각지에 설치된 분향소를 다녀갔다. 스스로를 위한 ‘애도’도 필요한 순간이다.

전문가들은 친구들과 웃으며 즐길 만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슬픔의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즐거움이나 기쁨의 감정도 본연적인 것이다.

웃고 즐기는 것은 절대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며, 희망을 찾기 위한 눈물겨운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상실에 대처한 성공적 사례를 찾고, 그들에 대한 책과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가능하면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할 수 있다.

도움이 제공됐을 때는 그 도움을 받아들인다. 도움이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

또 혼자 있고 싶을 때는 그들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당장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전한다. 도움이 없더라도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관심을 표시하는 일. 그것은 세상 모든 치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도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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