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제 탓이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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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엔 ‘고백의 기도’라는 것이 있다. 고해성사를 하기 전에 바치는 기도문이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고백의 기도는 사제가 먼저 ‘전능하신 하느님과’라고 하면서 시작하면, 신자들이 뛰따라 합송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는 부분에서는 가슴을 세 번 친다. 고백의 기도가 현대인의 의식을 일깨워 주는 중요한 점은, 자신이 죄를 짓거나 사회에 해를 끼친 것이 남의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라고 고백한다는 사실이다.

잘 안 되는 일은 다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 되는 일은 모두 자신의 공으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남의 탓만 하고 자기 잘난 체만 하는 이기적인 사회에선 갈등과 불신만 난무하게 된다. 이런 사회는 결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없다. 진정한 평화가 깃들기 어렵다.

지난 18일 낮 12시 서울 명동성당,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를 외치며 고백기도를 했다.

 

이날 염수정 추기경은 강론에서 “‘살릴 수도 있었는데…’라며 울부짖던 한 어머니의 억울함에 공감한다”며 “무죄한 이들의 죽음은 살아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통감한다.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현직 대통령이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교회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를 고백한 것은 의미가 크다.

대통령은 19일 대국민담화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했다. 담화 발표 도중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도 흘렸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놓고 연일 ‘네 탓 공방’이다. 대통령의 고백처럼 ‘제 탓이요’를 외치며, 자기 허물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많다면 제2의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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