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아이엠에프 이후였을 것입니다. 도시는 물론이고 시골에서조차 간혹 우리는 “못 받은 돈 받아드립니다.”,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곗돈을 챙겨서 몰래 도망가는 일이 허다했고 가까운 벗들 사이에서도 돈 떼먹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이죠. 오죽하면 돈 받아 주는 일을 ‘채권추심’이나 ‘채권회수’라며 법률적인 용어까지 앞세워 ‘합법적 방법’으로 회사를 세우는 나라가 되었을까요?
이윤엽 작가의 작품은 2009년 작이니 그때는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 예술활동을 접고 안성면 보개면 시골마을로 들어간 뒤의 일이네요. 그는 폐가를 구해서 허물지 않고 덧대는 방식으로 8개월에 걸쳐서 새 집을 지었지요. 대추리를 떠나 올 때 빈집들마다 버려진 문짝이며 창틀이며 쓸 만한 자재는 모두 트럭으로 싣고 와서 제비 둥지처럼 지었던 것이죠. 아마도 그는 그곳에 살면서 이 작품 속 인물을 구상한 듯해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은 악명이 높기로 자자합니다. 욕설 전화, 공포 조장, 납치 구타, 살해 위협, 수면 방해…. 그들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방법도 서슴지 않죠. 영화에서 ‘떼인 돈 받는 깡패’역은 단골소재는 아니어도 21세기 한국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자주 등장했잖아요. 그런데 이윤엽의 ‘돈 받으러 가는 사람’은 유쾌해 보입니다. 낯설고 무서운 이미지를 ‘배부른 돼지’에 비유했기 때문이죠.
19세기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했지요. 삶을 어떻게 질적으로 행복하게 살 것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에요.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났음에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다수의 ‘행복공창(幸福公創)’보다는 ‘멸사봉공(滅私奉公)’에 집착할 뿐만 아니라, 너도 없고 우리도 없는 ‘오직 나’만의 부와 권력을 탐하고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판화 속 인물은 마치 1970년에 발표한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의 인물들을 모두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군요.
황금 목걸리, 금시계, 골프 채, 대한민국 국기, 외제 자동차 키가 상징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저 인물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이곳저곳으로 떼인 돈 받으러 다니는 그런 사람이 아닐 거에요. 그는 어쩌면 관피아니 해피아니 하는 그런 사람일지도 몰라요. 국민의 세금을 먹는 사람말예요.
우리사회가 신뢰를 회복하면서 서로 돌보고 서로 살리는 ‘공공하는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제 개개인 각자가 ‘서로주체’의 ‘서로-삶’의 이치를 스스로 깨우쳐야 해요. 그래야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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