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박정임 경제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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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부뚜막에 앉아 찬밥 한 덩어리로 점심을 때우기 일쑤고, 난 배부르다 너희나 많이 먹으라며 더운밥 맛난 찬 자식들 다 먹이고 숭늉으로 허기를 달래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술 좋아하는 아버지가 허구한 날 주정을 하고 철부지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시를 읽고 편한 딸들이 몇이나 될까. 시인은 서른한 살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리움에 사무쳐 시를 쓰게 됐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 넋두리인 줄로만 알았다는 시인은 엄마가 되고 엄마가 액자 속 사진으로만 남았을 때 비로소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다며 속없는 딸이었음을 고백했다.

▲지난 주말 딸아이가 엄마 생일이라며 사들고 온 케이크는 블루베리 크림치즈 케이크였다. 우유에 길들지 않은 세대여서 영 손이 가지 않는데도 딸아이는 내가 그 케이크를 좋아하는 줄 안다. 고구마 케이크를 사면 반 이상을 버리는 때가 잦아 입맛을 굳이 내세우지 않았던 거다. 핑계란 게 엄마는 단걸 싫어한다 였는데, 딸아이에겐 정말 단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됐다.

▲내 어릴 적 기억에도 엄마는 단 것을 싫어했다. 오빠들이 볼세라 내 입에 초콜릿을 넣어주면서 주문을 외듯 ‘엄마는 단 거 안 좋아한다’ 라고 했다. 엄마는 밭일에 집안일에 산더미 같은 일들을 척척 해냈다. 뭐든지 잘하고, 뭐든지 참았다. 그러는 사이 손톱은 문드러지고 발뒤꿈치는 다 헤어졌다. 가슴은 검게 멍들었다.

▲24일 인천서구 문화회관서 공연되는 연극 ‘어머니’는 지난 1999년 정동극장 초연 때부터 주연을 맡았던 연극배우 손숙이 무대에 선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분단의 한국사를 배경으로 혹독한 시집살이에 자식의 죽음까지 감내한 우리네 어머니들의 한 많은 인생살이를 엿볼수 있다.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을 당연히 여기며 사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보게 한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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