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선거 먹튀방지법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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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두 차례 TV토론까지 참가한 뒤 돌연 사퇴했다. 그는 후보 등록 후 27억3천500만원의 선거보조금을 받았으나 사퇴하면서 이를 반납하지 않았다. ‘먹튀’ 논란과 함께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성호 스님은 당시 “이 전 후보는 대통령 후보로서 끝까지 대선을 완주할 능력과 의사가 없었는데도 완주할 것처럼 국민을 속였다”면서 “혈세로 만들어진 국고보조금 27억원을 즉각 환수 조치해야 한다”며 이 전 후보를 고발하기도 했다.

6ㆍ4 지방선거에서 32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선거 막바지에 3명의 광역단체장 후보가 사퇴, 또 먹튀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자 등록 마감 사흘 뒤인 지난달 19일 통진당에 선거보조금 28억여원과 여성후보자 추천보조금 4억8천만원 등 모두 32억8천억여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보조금이 지급된 뒤 이영순 울산시장, 고창권 부산시장, 백현종 경기도지사 후보가 줄줄이 사퇴했다.

백현종 후보는 사전투표가 끝난 6월 1일에 사퇴했다. 6ㆍ4선거 사흘 전이다. 후보 등록 후 사퇴하는 바람에 투표용지엔 후보 이름이 그대로 적혀 나왔다. 사퇴한 줄 모르는 유권자들은 백 전 후보를 찍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전투표에서 얻은 표와 함께, 당연히 무효표가 됐다.

이번 경기지사 선거에선 14만9천886표의 무효표가 나왔다. 모두 백 전 후보를 찍은 것은 아니겠으나 그를 지지한 표는 사표(死票)가 됐다.

후보 사퇴는 투표를 통해 국민의 지지 또는 심판을 받을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특히 선거 직전의 후보 사퇴는 무효표가 된다는 점에서 표심을 왜곡한다. 비난 받아 마땅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32억원의 국고보조금이다. 선거보조금 지급은 군소정당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끝까지 완주하지 않았다면 보조금을 환수하는게 맞다. 하지만 현행 정치자금법은 이같은 경우 자금 회수에 대한 규정을 두지않아 사실상 자금회수는 불가능하다. 이에 ‘선거보조금 먹튀방지법’ 제정 목소리가 높다.

미국에서는 선거운동을 중단하면 이미 수령한 보조금 중 적격 선거운동 경비에 사용되지 않은 액수는 반납하게 돼있다. 우리도 후보 사퇴가 선거전략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사퇴시 보조금 환수 등 제도적인 보완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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