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호국보훈

임양은 논설위원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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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우편 찍혀있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가서 /복받치는 기쁨에 넘쳐 울었오’

‘전선편지’라는 전쟁가요의 한 대목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전선에서 집으로 부치는 편지는 마냥 늦을 수 밖에 없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간에 오래 걸려 도착하곤 했다. 촌각을 모르는 생사의 소식에서 적어도 편지를 쓴 그 시각엔 남편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에 아내는 기쁨이 복받쳤던 것이다. 625 세대에서 당시 며느리였던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감정표시를 들어내고 하는 지금 세대와 달라 기쁨에 울어도 시어머니 모르게 부엌에 가서 혼자 울어야 했다. 지금의 가요 가사들은 장구한 평화를 누려서인지 ‘눈물이다’ ‘그립다’는 등 사랑타령 일색이다.

이렇게 해서 나라를 수호한 625 참전 군인은 최소 연령이 80대 중반이 됐을 만큼 노쇠 했다. 이미 타계한 이도 많다. 월남참전 용사들도 70살을 넘겼다. 이토록 목숨을 걸어 나라를 지키고 부흥한 보람이 있어 이 세대가 오늘의 영광도 누리는 것이다.

세상엔 애국도 많지만 하나뿐인 생명을 나라에 내어 놓는 것보다 더한 애국행위는 없다. 생명에 이등병이고 대장이고 하는 차이는 없다. 입으로 애국하는 정치인들의 애국은 더 말할 가치조차 없다. 그 옛날 이름 모를 산야에서 혹은 백병전 혹은 총격전 등으로 숨져간 그들은 오랜 세월 속에 그대로 백골이 진토 되었다. 다행히 살았어도 가난한 이들이 많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생각해본다. 참전군인이나 전상자들에게 나라가 지금 합당한 대우를 하고 있는가.

허울좋은 복지 포퓰리즘이 판쳐 국가 예산이 누수되는 판에 몇 안 남은 참전군인에게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의 참된 복지대책 추가를 못할 이유가 없다.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한 형식만 있을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이 강구 되기를 바란다.

/임양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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