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 인조(仁祖) 14년 1636년 12월 겨울. 청나라가 조선에 침입해 왔다. 인조는 급하게 한양 남쪽을 지키기 위해 축성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청나라 수만 군사에 포위된 채 고립된 인조와 조선왕실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름하다 결국 이듬해 1월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고 만다. 40여 일의 짧은 기간 겪은 이 전란을 우리는 ‘병자호란’이라 부른다.
전쟁을 끝내면서 인조는 항복의 증표로 ‘3배 9고두’라는 의식을 해야했다. ‘3배9고두’는 3번 큰절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는 의식으로 청 태종을 왕으로 모신다는 의미를 담은 치욕적인 의식이다. 이후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 나라로 전락해 조공을 바치는 등 고통을 당해야 했고 이 사건을 우리민족 굴욕의 역사 중 한 장면으로 꼽힌다.
우리민족의 굴욕의 역사가 서려 있는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초읽기에 들어갔다.
남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지난 15일부터 25일까지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 MOS)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남한산성에 대한 평가보고서에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려 남한산성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다.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 우리나라에서 11번째 세계유산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 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조선왕릉,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까지 10개의 세계유산을 등재했다.
이번에 남한산성이 등재된다면 경기도는 수원 화성에 이어 2번째 세계 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남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외형적 문화재의 가치뿐만 아니라 혼란스런 현 세태 속에서 ‘굴욕의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신적 교훈까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선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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