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된 그대들… 하얀 물꽃 되어 돌아오길
함민복 시인은 2014년의 4월을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이라 했지요.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이라고. 저는 그 시어들의 슬픔이 너무 무거워서 자꾸만 눈을 감곤 합니다. 처음 시 읽기를 마치던 순간 마지막 행이 마음에 콕 박혀서 빠지지도 않고요. 어쩌다 슬픔의 통증이 오는 날은 그것이 더 깊이 박히는 날이더군요.
함 시인은 “어른으로서 그런 상황에 놓인 생명을 구출하지 못한 안타까움에 젖어 있으면서도 시대의 아픔을 시로 노래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것에 대해 글을 안 쓰면 내가 시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이다. 시인이 그럴진대, 저는 그 ‘어른으로서’라는 전제가 자꾸 마음에 걸렸어요.
시인도 화가도 아닌 저는 그저 ”내가 어른인가“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지요. 제가 어른이라는 것조차 이렇듯 무거운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날마다 참혹합니다.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선생은 정약전의 유배를 빗대어서 여기는 배반의 삶, 저기는 구원의 꿈이라 말하며, 여기를 지나 저 너머로 가면, 그 너머 세상을 이끌고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를 묻고 했지요. 이하의 혹등고래가 가는 길이 선생이 말하는 ‘그 너머’의 길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고래는 푸른 바다 붉은 하늘을 건너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5천 만 년 전, 육지의 네 발 동물이 꿈꿨던 바다. 그 드넓은 바다의 하얀 정원에 이르러서야 결국 자유의 영혼을 찾았던 고래를 떠 올립니다. 고래가 된 그대들을 떠 올립니다. 하얀 바다에서 고래의 몸은 다시 생명이 꽃피는 정원이 되듯이, 그대들도 햐얀 물꽃이 되어 돌아오세요. 그 너머의 바다 이야기를 가지고 이 세상으로 건너오세요. 그런 다음 이곳에 그대들이 보았던 환한 생명의 정원을 틔워 주세요.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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