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잊혀질 권리’

박정임 경제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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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과거는 있다. 그런데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과거가 되면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가 없어진다. 본인과 관련한 자료가 인터넷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과거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사진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종종 본다. 평범한 사람도 논란의 중심에 서면 신상 털기가 이어지면서 사생활을 침해받기 일쑤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어쩔 수 없었던’ 인터넷 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13일 유럽연합(EU)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가 ‘잊혀질 권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스페인 변호사 곤살레스가 자신의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하다 자신이 지난 1998년 빚 때문에 집을 강제 경매당한 기사를 보게 된다.

 

구글에 삭제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한 곤살레스는 소송을 제기했고, 유럽사법재판소는 구글 검색 결과에 나오는 링크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잊혀질 권리’는 사용자들이 자신과 관련해 시효가 지났거나 부적절한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곤살레스 사건’ 판결은 유럽 내 28개국에서만 유효하지만, 파장은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인터넷상 정보에 대한 개인의 삭제 권리를 인정한 첫 판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잊혀질 권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사용자가 개인정보 관련 게시물을 삭제 요청하면 즉시 삭제토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행 정보통신망 법에서는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권리 침해가 발생한 게시물에 대한 접근을 임시로 차단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위반이 확인되는 게시물에 대해 포털에 삭제요청이 들어오면, 포털은 즉시 삭제 또는 임시조치를 취해야 한다. ‘잊혀질 권리’가 일부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를 강력히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는데다 과거를 세탁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거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잊힐 권리가 실정법상 어느 범위까지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하는 등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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