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리우드 영화에 북한이 종종 등장한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후 ‘중요한’ 적대국으로 묘사되고 있다. 미ㆍ소 냉전의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첩보물 ‘007’이 1990년대 들어 냉전시대가 종식되면서 시리즈의 동력을 잃게 되자 새롭게 찾은 적이 바로 북한이다.
007 시리즈 제20탄 ‘007 어나더데이’에는 북한내 무기밀매 현장에 위장 전입해 비밀 임무를 수행하던 제임스 본드를 북한 요원이 고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북한에 인질로 잡힌 것은 본드만이 아니다. 2010년 개봉된 영화 ‘쏠트’에선, 할리우드 대표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가 북한에 인질로 잡혀 갖은 고문과 학대를 받다가 겨우 풀려난다.
2012년 개봉한 ‘레드 던’은 북한군이 낙하산을 타고 미국에 침투했다가 10대 청소년들에게 당한다. 지난해 개봉한 ‘백악관 취후의 날’에선 아예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접수하고 대통령을 위협한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 석좌는 “한 편의 코미디 영화가 어떤 대북 제재보다 효과적”이라며 “북한이 외무성 성명 다음날 동해로 미사일을 쏜 건 김정은의 신경을 건드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영화 해적판이 DVD나 USB 등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될 경우 주민들에게 김정은이 암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거나 봉기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영화에서 북한이 가장 ‘핫’한 장소로 그려지는 것은, 미국이 북한을 주적의 하나로 지목했고 핵문제와 맞물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으로서 그럴듯한 리얼리티를 갖췄기 때문이다. 가장 폐쇄적인 국가, 도발적이고 예측불가능한 국가, 기이한 독재체제가 유지되는 빈민국으로 뉴스에 비춰지는 것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들은 즐겁지만은 않다. 웃음거리가 된 것에 기분 나쁘고, 한편 안타깝고 씁쓸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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