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농활(農活)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기자페이지

방학이면 대학생들의 ‘농활(農活)’이 펼쳐진다. 올해도 전국의 농촌에서 무더위에 구슬땀을 흘리며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을 돕고 있다. 노동의 가치, 농촌의 현실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다.

농촌활동을 줄인 ‘농활’은 오랜 역사를 갖고있다. 1920년대 농촌계몽운동, 1930년대의 브나로드운동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농활은 1940∼1950년대 단절기를 거쳐 1960년대 초 향토개척단 운동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땐 계몽ㆍ봉사적 성격이 강했다.

유신체제 시기부터는 계몽이나 봉사 활동을 너머 농촌사회의 구조적 변혁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당시 서울대 학생단체가 펴냈던 ‘자유언론’ 제26호에는 농촌활동을 ‘농촌현장에 들어가 농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모순의 척결을 지향하는 집단적이며 의식적인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농활은 1970~90년대 운동권 활동의 표상이었다. ‘총화(總和)’란 이름 아래 새벽까지 벽에 등을 대지도 못한 채 농민 의식화 활동이나 학생운동, 농촌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규제가 심했다. 경찰의 감시 눈초리도 날카로웠다.

이래저래 농활이 대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렇다고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활동 양상이 바뀌긴 했으나 농활은 계속돼 왔다.

최근 다소 주춤했던 농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술과 정치색이 사라지면서 내용이 다양해졌다. 농산물 수확과 잡초 제거 등 전통적인 활동 외에 전공을 살린 재능 기부가 인기다. 미대생들은 무미건조한 건물 외벽에 벽화를 그려넣어 시골마을을 아름답게 만들고, 의대ㆍ간호대생들은 건강 체크와 무료진료를 실시한다. 또 물리치료학과나 스포츠과학과 학생들은 마사지, 스트레칭, 물리치료 등의 봉사를 펼친다.

농활이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은, 상당수가 학점 등 현실적인 인센티브 때문이다. 농활이 취업에 필요한 스펙과 졸업 필수요건인 봉사활동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인식되면서 학생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렇다해도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며 뜨거운 여름을 보내다보면,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고령화 등으로 농촌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 대학생들이 농촌에서 땀 흘리며 그 가치를 깨닫고 농촌 현실도 살필 수 있게 농활을 교양과목으로 개설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