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이전의 그늘] 4. 떠나는 직원들
서울 명문대를 졸업하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입사한 A씨는 요즘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공사 입사를 위해 수년간 학교 선ㆍ후배들과 스터디도 하고 학원도 다니면서 어렵게 합격의 영광을 안았지만 9월이면 나주로 본사가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심각하게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
거리도 거리지만 낯선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고 싶지 않을 뿐더러 여자친구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서울경기지역본부로의 전입을 생각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달해 차라리 입사 시험을 다시 준비해 수도권에 있는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소속기관에 근무했던 B씨(여)는 전주 혁신도시로 이전하기 전 퇴직했다. 여성 직장인으로서 아이들을 두고 혼자 전주로 갈 수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처럼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소위 엘리트 출신 직원들의 퇴사와 이직이 현실화 되고, 이전 이후에도 주거문제와 의료시설, 교통 문제 등의 난제들이 해결되지 못할 경우 퇴직과 이직은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A씨는 “그동안 공사가 ‘신의 직장’이라는 영예를 얻으면서 명문대 출신에 높은 스펙을 자랑하는 입사지망생들이 대거 몰려 유능한 인재가 많다”며 “하지만 이전이 확정되고, 또 현실화되면서 (나와)같은 생각을 하는 직장 동료들이 상당수 있고 일부는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을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이전 기관들은 젊은 직원들의 이같은 이탈이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경우 업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전한 공공기관이 직원을 신규 채용할 때 지역대학 인재 채용률을 적용하는 ‘지역인재 할당제’의 추진도 제시하고 있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직원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공공기관의 이전은 지역본부로의 전출을 선호하는 기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승진은 다소 늦더라도 가족과 함께 지내겠다는 분위기가 이전 기관내에서 절대적이라는 전언이다.
실제로 aT와 농어촌공사, LH, 한국전력 등의 경기본부 전출 경쟁률은 최대 100대 1까지 치솟는 것으로 알려졌고, 특히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여직원들의 선호도가 높은 실정이다.
하지만 전출 희망이 많아지면서 본사 직원과 지역본부 직원들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도 나타나고 있다. 자칫 본사 직원들에게 밀려 타 시ㆍ도로 이동되는 것을 걱정하는 지역본부 직원들이 노조차원에서 인사 이동에 제동을 거는 등 자리 지키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9월 나주로 이전하는 한국농어촌공사의 한 직원은 “과거에는 본사 근무가 승진과 연봉 등에서 유리해 어떻게든 본사에 들어가기 위해 애를 썼었다”면서 “하지만 이전 문제가 현실화되면서 이제는 지역본부로의 전출을 위해 유명 인사까지 동원한다는 소문이 도는 등 지역본부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김규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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