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빈자의 대변인, 프란치스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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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1182∼1226)는 봉건제가 와해되던 12세기 말 부유한 포목상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변혁의 시기에 귀족과 시민, 교황 지지자와 황제 지지자,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갈등과 다툼이 심했다.

늙은 거지의 얼굴에서 예수를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프란치스코 성인은, 수도원 밖으로 나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모두를 평등하고 고귀한 존재로 여긴 프란치스코 성인의 형제애는 권력과 지위의 틀에 매여있던 교회와 세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성인은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했던 예수님처럼 살아 ‘제2의 그리스도’로 불린다.

지난해 3월 교황에 선출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 교황명으로 쓰고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사제와 교구장 주교 시절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인권의 유린을 목격했다. 이후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주면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교황에 오른 뒤에도 검소하게 생활하며 낮은 곳에서 가난하고 소외받고 핍박받는 자들과 함께 하는 행보를 계속해왔다. 람페두사의 아프리카 난민 방문으로 시작된 교황의 행보는 철저히 가난한 이를 먼저 선택하는 사랑의 발걸음이었다. 얼굴이 온통 종기로 뒤덮인 피부병 환자에게 입맞춤 하는 장면은, 흡사 한센병 환자을 껴안던 프란치스코 성인을 떠올리게 한다.

교황은 빈자(貧者)의 대변인으로 전 세계인의 존경을 듬뿍 받고 있다. 돈을 우상화하며 인간성이 침해되고 있는 곳에 정의와 평화와 인간 존엄성을 살리는데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지역 최초로 14일 한국을 방문한다. 교황의 한국 방한에 종교를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교황이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은 세계 유일의 남북분단 국가이고, 가난과 불의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은 한국의 현실을 마음 아파하며 함께 하기 위해서 일것이다. 교황은 방문 기간중 15일 대전에서 미사를 집전한 후 세월호 생존자와 유족을 만나고,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대했다.

교황의 방문이 한반도의 갈등과 슬픔을 치유하고, 사랑과 평화의 기운을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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