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아버지 남경필 - 정치인 남경필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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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유명한 도적이 있었다. 그 나라 풍습에 도적은 아들과 함께 기름에 튀겨 죽였다. 도적과 나이 어린 아들이 잡혀왔다. 법에 따라 둘은 기름이 가득한 가마 솥에 넣어졌다. 불이 지펴졌고 기름은 끓기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가 아들을 머리 위로 들었다. 도적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아들을 들고 있었다. 도적인 아버지에게도 아들은 소중한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22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하나님이 이르되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를 제사의 재물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따랐고 이삭에게 제사에 쓸 나무를 지게 했다. 이윽고 그 땅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놓고 칼로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부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하시니라.”

천하의 죄인이라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다를 게 없다. 앞선 도적의 얘기가 전하는 뜻이다. 아들을 희생시키는 각오야말로 극단의 믿음을 얻게 되는 징표다. 뒤의 창세기 말씀이 전하는 뜻이다. 아주 흔한 아버지의 사랑과 아주 특별한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기독교뿐만 아니다. 불교, 유교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유독 강조한다. 세상 아버지들의 아들 사랑이 그런 거다.

남경필 도지사가 말했다.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대신해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피해를 본 병사와 가족 분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잘못입니다. 제 아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 법으로 정해진 대로 응당한 처벌을 달게 받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저도 같이 벌을 받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겠습니다”.

아들 남 상병은 지금 군 당국에서 조사받고 있다. 모르긴 해도 외부와 철저히 통제되고 있을 것이다. 남 상병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항변(抗辯)하는 것뿐이다. ‘성추행은 장난이었다’며 부인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버지는 냉정했다. 남 지사 사과문 어디에도 변명은 없었다. 한 발 나아가 ‘제 아들은 처벌을 받을 것’이라며 단정까지 했다. 강한 아버지 모습이다.

차남도 공군에 복무 중임이 이번에 알려졌다. 지도층의 병역비리가 만연된 사회다. ‘돈 없고 빽 없는 놈만 군에 간다’는 아주 오래된 속설, 그 속설이 반세기 지나도록 통용되는 사회다. 버스 회사 소유주니 돈은 있을 것이고, 5선의 여당 국회의원이니 빽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 지사는 두 아들을 사병으로 입대시켰다. 당연한 일인데도 얘기되고 있다. 귀감이 될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아버지의 무한 책임 인정과 모범적 병역의무 수행을 감안하더라도- 뭔가 모를 찜찜함과 혼란스러움은 남는다. 그건 남 지사가 도지사이고 남 상병이 아들이어서다. 엄연한 현실 속 권력이기 때문이다.

‘군대는 줄’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된 말이다. 이때의 ‘줄’은 대개 ‘누구 아들’ ‘누구 손자’를 말한다. 그 ‘누구’를 향해 지휘관들이 줄을 선다. 그리고 이 줄이 병사들 사이엔 ‘권력’으로 인식된다. 군(軍)은 계급으로 통일돼야 할 조직이다. ‘돈 없고 빽 없는 청춘’들에겐 그것이 ‘평등’이다. 그런 곳에 특권이 생긴다는 것, 그건 곧 ‘돈 없고 빽 없는 청춘’들의 평등권 박탈을 의미한다.

전해지기에는 여러 번 때렸고 여러 명 맞았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묵인을 의심하는 대목이다. 만일, 남 상병의 가혹행위가 묵인된 적이 있고, 그것이 남 지사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됐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피해 병사에겐 권력에 의한 폭력이 되는 것이고, 항거할 수 없는 사회적 억압이 되는 것이다. 지금 국민이 ‘배경이 있을 것’이라며 의혹을 품는 부분도 바로 여기다.

진실규명 외엔 수가 없다. 남 지사에겐 범부(凡父)의 권리가 없다. 남 상병은 경기지사의 아들이다. 대통령의 아들이 될 수도 있다. 궁금증을 남기면 안 된다. 다 밝혀야 한다. 개인이 저지른 폭력인지 권력이 덮어준 폭력인지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해명은 ‘부대 내 아무도 남 지사의 아들인지 몰랐었다’다.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몇 해 전 남 지사가 지역구를 옮길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갑작스런 주소지 이전 때문이었다. 그때 남 지사가 말했다. “애가 학교를 서울로 진학했습니다. 그래서 옮겼어요. 안 옮기면 그게 바로 위장 전입이예요.” 그렇게 철저하던 남 지사다. 논란을 없애려 아들을 쫓아 이사까지 하던 남 지사다. 그랬던 ‘정치인 남경필’이 지금 ‘아버지 남경필’의 덫에 걸려 ‘정치 8부 능선’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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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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