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할류족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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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잘 모르겠는 신조어도 많다. ‘하빠’도 그렇다. 하빠는 발음이 서툰 아기들이 아빠 역할을 하는 할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란다.

할아버지들이 손자 손녀 육아에 뛰어들면서 ‘하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은퇴 후 집에서 삼시 세끼 밥만 축낸다며 ‘삼식이’라 놀림을 당하던 할아버지들이 육아의 주축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출간된 ‘하빠의 육아일기’는 전직 경찰서장이 세명의 손자를 돌보며 펴낸 것으로 하빠의 유행을 더욱 부추겼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손주 육아를 책임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고있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젊은 맞벌이 부부 510만 가구 중 250만 가구가 육아를 조부모에게 맡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맞벌이 부부 자녀 2명 중 1명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맡아 키우는 셈이다. 이에 따라 ‘할류’라는 또 하나의 신조어가 생겼다.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는 딸, 아들, 며느리를 돕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자녀 때와는 달리 여유를 갖고 손주를 키우면서 진정한 육아의 즐거움을 느끼는 할류족도 많다. 자식을 키울 때는 멋모르고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손주는 뭔가 알고 키우니까 재밌다는 것이다. 힘든 것보다는 아이가 주는 기쁨이 많다고. 할류족은 그래서, 손주를 ‘떠맡아 키운다’는 수동적 자세보다는 ‘자녀보다 손주를 더 잘 키워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다.

두 외손자를 키운 3년간의 추억을 모은 책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를 펴낸 정석희씨는 “내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를 들라면 손자 녀석 둘을 우리 집에서 키운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K-POP 한류도 뜨지만 할류도 뜨고 있다. 소비 시장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큰 손으로 떠오르면서 ‘할류 열풍’이란 말까지 생겼다. 할류족 때문에 아이를 업을 때 두르는 포대기며 면기저귀 같은 옛날 육아용품도 다시 인기다.

할류족을 타깃으로 한 육아서적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하빠의 육아일기’에 이어 기업과 지자체에서 예비할머니 육아 서포트 강의를 하는 인선화씨의 ‘워킹맘과 할머니가 함께 읽는 명품할머니 육아’, 요리연구가 강홍준씨의 ‘푸드스타일리스트 할머니가 만든 건 다 맛있어’라는 책 등이 인기다.

할류 유행 속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가족의 소중함과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잃지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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