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빨간 우체통의 부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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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빨간 우체통’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PC통신이 생기면서 설 자리를 잃기 시작하더니 이메일이 등장하고 휴대폰이 일상화 되면서 주변에서 빨간 우체통 찾기가 쉽지않다.

2013년 말 전국에 설치된 우체통은 1만8천60개로 지난 2008년의 2만3천761개에서 5년 만에 4분의 1가량인 5천701개가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만 648개의 우체통이 사라졌다. 우체통이 아날로그의 유물로 전락하면서 편지는 없고 각종 고지서와 홍보물만 넘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3개월간 한통의 편지도 들어오지 않는 우체통을 철거하고 있다.

하지만 산과 바다, 관광명소에는 거꾸로 우체통이 늘어나고 있다. 신속배달이라는 본연의 임무 대신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담거나 가족끼리 그동안 얘기하지 못했던 애틋한 사연을 전하는 등 특별한 의미를 내세운 우체통이다.

추억과 의미를 만드는 우체통은 지난 2006년 울산 간절곶에 처음 생긴 이후 힐링 열풍이 불면서 급격히 늘어 현재 사설기관이 운영하는 우체통까지 포함하면 100여개에 이른다.

해맞이 명소로 유명한 간절곶의 ‘소망우체통’은 높이가 5m에 달한다. 일출을 보러온 이들의 소망을 적은 편지가 가득하다. 광주 수완호수공원의 ‘희망우체통’은 높이 7m, 둘레 12m, 무게 6t의 국내 최대다. 지금은 밀렸지만 2009년엔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설악산 중청대피소에 있는 대청봉 우체통은 해발 1천708m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우체통이다. 우편엽서는 중청대피소에서 판매하고, 대청봉 등반 기념 소인도 찍어준다. 지리산 장터목대피소와 벽소령, 세석 대피소에는 ‘하늘 아래 첫 우체통’이라 부르는 새집 모양의 우체통이 있다.

특별한 우체통의 대표적인 것은 ‘느린 우체통’이다. 일반 우편과 달리 수개월, 1년 등 일정기간 우편물을 보관했다가 배송해준다. 인천 영종대교 기념관에는 낙조를 바라보며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고 1년 후 받아보는 ‘느림보 우체통’이 있고, 강릉 경포해변에도 이와 비슷한 ‘추억의 느린 우체통’이 인기다.

제주 올레길에도, 서울 북악팔각정공원에도, 강원 화천 평화의 댐에도 사랑과 추억, 소망을 담아 나르는 느린 우체통이 있다.

산이나 들로 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 가을, 여행길에서 나에게 쓰는 편지 한장은 어떨까.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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