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은행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내 마음까지 노랗게 물들고 말아/ 나도 가을이 된다.… ’ 용혜원 시인의 ‘가을에 은행나무 숲길을 걷노라면’의 일부다. 가을이 오면 부채꼴 모양의 노란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에 꽂거나 생각나는 사람에게 가을 소식과 함께 보낸 일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도시의 가을은 은행나무에서 시작한다. 가로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가거나 은행 열매가 발에 밟히기 시작하면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은행나무는 왕벚나무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많은 가로수다. 전체 가로수의 20% 정도이고, 도시 지역은 40%나 된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각광받는 것은 기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다른 수종에 비해 5∼6배의 산소를 배출해 대기오염 정화 능력이 뛰어나다. 병충해에 강하고, 수명도 길다. 열매는 약재로 활용된다.
은행나무는 동물처럼 암수가 구분된다. 열매는 암나무에에서만 열린다. 다 좋은데 이 열매가 문제다. 은행나무 열매는 악취를 풍겨 시민들의 코를 틀어막게 한다. 행인들에게 밟혀 터지면 냄새가 더 심해지고 거리도 지저분해져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노란색 얼룩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은행 열매가 악취를 내는 것은 은행 껍질에 있는 은행산과 빌로볼 성분 때문이다. 고약한 구린내를 풍겨 곤충으로부터 열매를 보호하려는 나무 본능에서 비롯됐다.
매년 이 맘때만 되면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거리 악취민원을 줄이기 위해 은행 열매 채취반을 운영해 열매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 미리 채취하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일부 지자체에선 암나무를 잘라내기도 한다. 또 열매가 열리지않는 수나무로 바꿔 심기도 하는데 직경 15cm 정도 은행나무 한그루에 49만원 정도의 교체 비용이 든다. 수나무로의 교체는 비용도 그렇거니와 인간 편의를 위해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