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언어폭력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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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중ㆍ고등학교가 있어 학생들과 가끔 마주친다. 얼마전 편의점 앞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컵라면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데 말끝마다 욕이다. 욕을 빼면 대화가 안되는지 욕을 입에 달았다. 욕을 잘 하는 청소년을 보면 무의식으로 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재미삼아, 장난삼아 던진 말 한마디가 폭력이고, 더 큰 폭력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욕은 심각한 ‘언어폭력’이다.

언어폭력은 당사자들을 사지로 내몰기도 한다. 지난해 3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과 폭언에 시달려온 10대 남학생이 23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목숨을 끊었다. 숨진 남학생이 남긴 유서에는 자신을 괴롭힌 가해 학생들의 이름과 내용 등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욕설이나 협박으로 상대방이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느꼈다면 이는 명백한 언어폭력이다. 지난 2012년 8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칼부림 사건은 사소한 언어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잘 말해준다.

흉기를 든 남성이 옛 직장동료였던 여성 2명과 남성 2명을 수차례 칼로 찌른 ‘여의도 칼부림’ 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 남성은 “직장동료들이 나를 험담했다. 기분 나빠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군에서의 언어폭력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 광주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육군 강모 상병은 선임병으로부터 욕설 등의 언어폭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강 상병은 “선임병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언을 하면서 너무 괴롭힌다. 죽고 싶다”는 내용의 일기장을 남겼다. 군부대에서 발생하는 언어폭력이 자살이나 총기난사 등 대형사고로 이어지며, 고질적 병영문화의 병폐가 언어폭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사이버 언어폭력도 이미 사회문제로 자리잡았다. 익명이 보장되는 가상의 공간에 쏟아내는 악성 댓글 등, SNS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욕설을 하거나 인격모독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이버 폭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언어폭력은 모욕죄로 ‘형법’이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해당되며 형법 311조에 의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꼭 때리고 상처를 입혀야만 폭력이 아니다. 언어폭력은 그 어느 폭력보다 후유증이 크다. ‘칼보다 무서운 게 혀’라는 말도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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