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사이버 망명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기자페이지

하루에 수십건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이용한다. 동창, 모임, 소그룹 단체 카톡이 많다보니 폭풍이 휘몰아치듯 수백건의 대화가 오가는 날도 있다. 카톡은 전 국민의 주요 메신저다. 국내 가입자가 4천만명에 달하고, 카톡 메시지는 하루 평균 55억건이나 된다.

그런데 요즘 카톡에서 탈퇴해야 하는것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우리 방에서도 ‘사이버 망명’을 하잖다. 무슨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오간건 아니지만, 우리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옮겨가는 대상은 독일 ‘텔레그램’이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최대 SNS ‘브콘탁테’를 설립한 파벨 두로프가 만든 무료 메신저다. 파벨 두로프는 지난 4월 브콘탁테가 보유한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대의 개인정보를 넘기라는 러시아 정부의 요구를 거절하고, 독일로 망명했다.

갓 서른을 넘긴 파벨 두로프는 정부기관의 감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소통수단을 위해 텔레그램을 개발했다. 텔레그램은 대화내용이 암호화되는 등 보안을 강화했고, 이용자 개인정보 보호를 우선시했다.

 

사이버 망명의 발단은,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사이버상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부터다. 발언이 나오자마자 검찰은 “인터넷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허위사실 유포자를 상시 적발하겠다”며 전담팀을 꾸리기 시작됐다. 인터넷 공간은 크게 동요했고, ‘카톡도 감시당할 수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이후 검열이 불가능한 외국 메신저로 갈아타자는 주장이 일면서 텔레그램이 사이버 망명처로 떠올랐다. 텔레그램 국내 이용자 수는 현재 160만명을 넘어섰다.

사이버 공간의 유언비어 살포나 인격모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난과 욕설로 오염돼가는 저질문화를 방치해선 안된다. 여기에 재해, 재난, 테러, 전쟁의 공포 시대에서 국가기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감시활동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합법적이어야 한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불법적인 도청과 필요 이상의 감시, 정보 접근 능력을 가진 자들의 파괴적 정보수집 활동이다. 이번에도 정부와 검찰이 너무 거칠게 대응했다.

가뜩이나 불신이 넘치는 사회에서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국가기관이 개인정보에 접근하는데 합법적 테두리를 지키지 않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범죄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