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맛의 방주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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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Noah’s Ark)’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배 이름이다. 인류의 선조들이 타락한 생활에 빠지자 하나님이 홍수를 내려 멸망시키려 할때 홀로 바르게 살던 노아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만든 방주(方舟)다. 노아는 3층으로 만든 커다란 배에 그의 가족과 한 쌍씩의 여러 동물을 태웠고, 대홍수로 모든 생물이 전멸했지만 살아남게 된다.

노아의 방주 같은 ‘맛의 방주(Ark of Taste)’가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토종 종자ㆍ음식을 찾아 목록을 만들고 그 지역의 전통음식과 문화를 보전하는 활동이다. 이탈리아 브라에 본부를 두고 150여개국 10만여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기구 국제슬로푸드의 프로젝트다.

맛의 방주는 199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음식 문화유산 소멸을 막고 세계 음식에 관심을 두자는 취지로 처음 시작했다. 글로벌화로 획일화된 음식이 생산ㆍ소비되고 있는 것을 경계하는 세계적 운동으로, 전통 먹거리 종자를 보호하고 종 다양성을 지켜나가며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해 지역농업을 활성화 하는 사업이다.

 

맛의 방주 선정 기준은 특징적인 맛을 가지고 있을 것, 특정 지역의 환경ㆍ사회ㆍ경제ㆍ역사와 연결돼 있을 것, 소멸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할 것,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될 것 등이다.

1997년 이탈리아에서 ‘맛의 방주 선언문’ 발표 이후 80여개국 2천여종의 먹거리가 목록에 올랐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처음으로 울릉도 칡소와 섬말나리, 진주 앉은뱅이 밀, 연산 오계, 제주 푸른콩장, 장흥 돈차 청태전, 제주 흑우, 태안 자염 등 8종이 등재됐다.

올해도 토종 먹거리 20가지가 맛의 방주에 추가로 승선했다. 제주 꿩엿ㆍ강술ㆍ댕유지ㆍ쉰다리ㆍ재래돼지 등 제주와, 울릉 홍감자ㆍ손꽁치ㆍ옥수수엿청주 등 울릉도의 먹거리가 많다. 도내에선 남양주 먹골 황실배와 파주 현인닭(토종닭)이 포함됐다.

고종 황제에게 진상될 정도로 맛이 뛰어난 황실배(黃實梨)나 춘향전에도 등장하는 청실배(靑實梨)처럼 한때 흔하게 보고 먹을 수 있었지만, 서양과 일본에서 도입된 개량종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먹거리들이다.

한편 ‘2013 슬로푸드 국제대회’를 개최한 남양주시가 최근 ‘맛의 방주 전시관’을 개관했다. 유기농테마파크 내에 위치한 전시관엔 세계의 사라져가는 204개 품목의 음식과 종자, 130여종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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