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이재명 시장, 서명엔 빠지고 발표만 했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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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인근 복덕방에 사무실이 꾸려졌다. 경기도 책임자와 성남시장이 함께했다. 남경필 지사는 독일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던 즈음이다. 사고 대책본부를 꾸리는 것이 급했다. 본부장은 당연히 성남 시장일 걸로 봤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경기도지사와 성남시장이 공동으로 맡았다. 성남시장의 반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숨진 사람들 상당수가 성남 시민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댔는지도 모른다. 희생자 대부분은 성남시민이었다.

결정된 본부 사무실도 이상했다. 도지사까지 임명됐으면 사고의 비중이 커졌음을 의미했다. 당연히 신속한 행정 처리가 가능한 성남시청에 자리를 잡아야 옳았다. 구름처럼 몰려들 취재진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성남시청이 제격이었다. 전국 최고 시설로 곤혹까지 치렀던 번듯한 청사다. 그런데 본부는 하위 기관인 분당구청에 차려졌다. 역시 성남 시장의 뜻이 아니었나 싶다. 시청에 차려질 경우 책임의 상징성이 커질 수도 있어서다.

본부를 알리는 표식도 이상했다. 대책본부가 구성됐고 곧이어 구청 건물에 사무실을 알리는 표식이 붙었다. 본부장을 포함하는 경기도(남경필 지사)ㆍ성남시(이재명 시장)가 명기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런데 성남시 공무원이 만들어 붙인 표식은 달랐다. ‘경기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대책본부’였다. ‘성남’만 쏙 빠졌다. 경기도 쪽의 항의가 있었을법하다. 혹시 그래서였을까. 표식 중 ‘경기’ 부분이 슬그머니 잘려나가 균형(?)이 맞춰졌다.

대형 사고의 책임자는 잘해야 본전이다. 사고와 오버랩되는 이미지가 공직 생활에 도움될 리 없다. 판교 참사도 그렇게 갈 거라 봤다. 책임 주체, 책임 범위, 보상 주체, 보상 범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언론 앞에 선 건 경기도 측 박수영 부지사였다. 합의의 초기 단계였던 ‘6개 합의안 발표’도 박 부지사가 했다. 그때까지 성남 시장은 마이크를 잡지 않았고 주도한 발표도 없었다. 늘 한 걸음 뒤에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난망하던 합의가 타결됐다. 참사 57시간 만의 일이다. 제2의 세월호로 단정 짓던 언론조차 놀랐다. 기자와 카메라가 대책본부 발표장에 진을 쳤다. 그런데 그 발표장에 들어선 건 박 부지사가 아니었다. 침묵하던 이재명 시장이 들어섰다. 그리고 700자가 넘는 장문의 글을 담화문처럼 읽어 내려갔다. “사고대책본부를 만들고 사고 수습에만 치중해왔다…유가족들께서 초인적이라 할만큼의 합리성과 인내심을 보여주셨다”.

수습을 위해 노력 한 점은 맞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합의문에 이 시장이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통상 서명을 하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합의 내용에 만족하지 않거나 합의에 당사자가 되기를 거부하거나다. 어느 경우든 이 시장은 합의문의 법률적 당사자에서 끝내 빠졌다. 그렇다고 대책 본부의 대변인도 아니다. 그런데도 극적 합의 발표 순간에 그가 나섰다. 혹, ‘내가 발표하면 안 되겠나’고 자청이라도 한 건가.

언론은 그의 뜻대로 쫓아갔다. 이 시장의 얘기가 영웅담처럼 소개됐다. ‘성남 시장 중재로 합의 이뤄’, ‘변호사 출신 다운 중재 능력’….

필자는 최초 대책 장소였던 복덕방 사무실에 있지 않았다. 공동 본부장 구성ㆍ분당 구청 사무실 결정에 대해 아는 바 없다. 협상 테이블도 엿본 바 없다. 희생자 과실이 왜 30ㆍ50%에서 40%로 중재됐는지 모른다. ‘경기도와 성남시의 책임은 수사 결과에 따른다’는 단서가 왜 추가됐는지도 모른다. 서명을 안 한 이 시장의 속을 들여다볼 재간도 없다. 협상 당사자였던 박 부지사도 ‘모두의 노력’이라 얼버무린다. 귀동냥도 여기까지다.

그럼에도, 찜찜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다. ‘이재명 극본ㆍ이재명 주연’의 허구 단막극을 시청한 듯해서다. 합의안에 서명하지 않았으면 발표자로 나서지 말았어야 했고, 발표자로 나설 거면 합의안에 서명했어야 했다. 그게 책임과 권리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균형이다. 더구나 이번 사고가 뭔가. 시민 16명의 목숨이 악마의 목구멍처럼 벌어진 구덩이로 빨려 들어간 참사다. 정치적 득실을 찾아 주판알을 튕기기엔 너무도 죄스러운 사고다.

그날, 이 시장은 ‘합의 극적 타결’의 주인공으로 발표장에 섰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 시장은 다시 ‘판교 사고와 나는 무관하다’며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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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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