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엔딩 노트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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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69세의 남자. 67세에 평생을 몸바친 회사를 퇴직하고 이제 막 한가한 노년의 여유를 즐기려 할 무렵 죽음이 찾아온다. 많이 억울할 만한데, 정작 암 말기를 선고받은 당사자는 크게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그동안 살아온 방식대로 죽음을 맞을 순간을 성실하고 꼼꼼하게 준비하기 시작한다.

2011년 개봉된 일본영화 ‘엔딩 노트(Ending Note)’는 이렇게 조금은 독특한 삶의 마무리를 보여주는 한 남자의 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남은 6개월의 시간을 어떻게 소중하게 보낼까 고민하며 엔딩 노트를 만든다. 죽기 전에 해야할 일들이다.

리스트엔 손녀들의 하인 노릇하기, 소홀했던 가족과 여행 가기,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믿지 않았던 신 믿어보기, 평생 찍어주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장례식 초청자 명단 작성 등이 들어있다. 주인공은 이를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간다. 마지막엔 94세 된 어머니께 먼저 가서 죄송하다는 전화를 하고 아내에겐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영화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사랑해’라는 한마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작품이란 호평을 받았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선 엔딩 노트 쓰기가 유행했다.

최근 일본에서 ‘종활(終活ㆍ슈카쓰)’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종활은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모든 활동이다. 관련 책자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전문잡지까지 나오고, 전국 각지서 종활 세미나도 인기다.

종활의 영역은 다양하다. 유언장 작성부터 영정사진 촬영, 희망하는 장례 스타일 찾기, 수목장 견학, 묘비에 쓸 문구 작성, 상속 준비, 사후 정리 등 포괄적이다. 특히 인기를 끄는게 엔딩 노트다.

이는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엔딩 노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시간을 갖고, 내가 추구해야 할 인생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귀중한 시간과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잘 사는 일에만 골몰하지 정작 잘 죽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깨닫지 못하고 산다. 얼마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씨의 비보를 접하면서,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슬픔과 안타까움을 줄까 생각하며 엔딩 노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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