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울광장에서 ‘멍 때리기 대회’라는 이색 대회가 열렸다. 멍 때리기 대회는 나이ㆍ성별ㆍ직업 불문, 아무 생각없이 넋을 놓고 그냥 멍~하게 있으면 되는 대회다. 심박측정기에서 심박수가 가장 안정적으로 나온 사람이 우승하게 된다. 50여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우승자는 수원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지명(9) 양이었다. 김양은 “모두가 혀를 내두들 정도로 압도적으로 멍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김양은 여느 초등학생처럼 학교 수업 후에 발레, 가야금, 영어 등 여러군데 학원을 다녔다. 어느날 영어학원 선생님이 ‘지명이는 가끔 생각이 딴 세상에 가 있다’고 했던 말이 생각 나, 김양의 어머니가 대회 참가 신청을 했다. 우승을 한 김양은 “학원 다니면서 너무 힘들거나 지칠때 저절로 멍해졌다”고 말했다. 대회 직후 김양의 어머니는 학원 수를 대폭 줄여 아이가 좋아하는 예체능 학원만 보내고 있다.
김양은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한꺼번에 많은 내용을 받아들여야 했고, 과부하가 걸리자 멍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양에게 ‘멍’은 일종의 뇌를 쉬게 하는 방법이었다.
현대인들도 김양처럼 멍 때리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현대인의 뇌는 하루 종일 바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각종 디지털기기가 쏟아내는 정보 탓에 1분 1초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TV를 보면서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못하고 만지작거린다. 처리해야 할 정보들로 뇌는 혹사를 당한다. 뇌에 들어가는 정보는 많은데 두뇌 용량이 정해져 있다보니 디지털 과부하가 걸려 건망증이 생기는 이들이 늘고있다. 이대로 뇌를 방치하면 ‘디지털 치매’에 걸릴지도 모른다.
몸의 이완운동으로 스트레칭이 있다면, 정신의 이완운동으로 ‘멍 때리기’가 제격이다. 멍 때리는 동안 뇌는 휴식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때 뇌는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고 그동안의 정보와 경험을 정리한다. 불필요한 정보가 제거된 공간에는 기억이 축적된다.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서 멍 때리다 만유인력의 실마리를 발견했고, 아르키메데스 역시 목욕탕에서 멍하다 부력의 원리를 발견했다. 멍한 순간, 아무 것도 하지않고 넋을 놓고 있는 순간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다. 머리가 휴식하고 생각을 재정비하는 창조의 시간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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