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홧김 범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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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부천에서 30대 자매가 40대 남성에게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초등학교 인근 주택가 이면도로에서 남성은 이웃집 여성인 두 자매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빌라와 다세대주택이 많은 곳에 사는 이들은 주차문제로 자주 다퉜다는데, 남성은 쌓인 악감정을 살인으로 표출했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저지르는 홧김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16일 오전 2시 55분쯤 김포에선 음주운전 상태인 남성이 수사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차량에 LP가스통을 싣고 파출소로 돌진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지난 10일엔 안산의 한 조경농장에서 부부가 외도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남편이 부인의 머리를 난로에 부딪혀 숨지게 한 후 암매장 했다가 들통이 났다.

층간 소음 다툼으로 인한 살인, 주차 시비로 인한 살인, 그냥 화가나서 살인, 무시해서 살인…. 욱 하는 감정으로 인한 홧김 범죄가 도를 넘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휘두르는 폭력도 점점 많아져 심각한 사회문제다.

 

갑작스런 분노와 충동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발생한 살인 사건은 지난해 전체 살인의 39%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발적 살인’ 비율이 30% 전후였던 점을 고려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분노를 느끼는 건 자연스런 감정이지만 스트레스나 피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거나 억울한 대우를 받는다는 강박증이 계속되면, 감정을 조절하는 뇌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작은 자극에도 폭발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단정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ㆍ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느끼게 되는 좌절감이나 분노가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빈부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한 한의원에서 성인 228명을 대상으로 집중력과 감정조절 실태를 조사했더니 74명이 감정기복이 심해 작은 자극에도 분노가 폭발한다고 응답했다. 계속되는 불경기와 취업난, 치솟는 물가 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 적지않은 탓이다. 민생 고초에 세월호 트라우마 등으로 사회질서가 급격히 흐트러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평범한 시민이 저지르는 범죄현상을 보면 언제 어디서 피해를 당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불안하다. 분노사회의 징조 같다. 끓어오르는 자신의 감정을 온건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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