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상 이런 극한 논리가 있다. ‘인간적인 게 비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인 게 인간적’이라고. 알기 쉬운 생활의 예를 들어 설명 하겠다. 친한 처지에 돈을 빌린다고 가정하자. “우리 사이에 차용증은 무슨 차용증”하며 문서 없이 거래를 한다. 인간적이다.
그러나 나중에 법정 다툼까지 가게 되는 비인간적 요소를 지닌다. 이 때에 차용증으로 객관화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나 책임 한계를 분명히 하여 되레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이라 하여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철학하는 정신을 철학이라 하는데 철학하는 정신은 일상을 회의 반성 비판 자각하는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공무원 연금개혁이 이렇다. 당장은 비인간적이다. 더 내고 덜 받는다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부의 개혁안 발표에 의하면 6급의 경우, 내는 것 보다 평균 일억일천만원을 더 받는다고 한다.
그럼 반대하는 전공노(전국공무원노동조합) 측 얘기는 어떤가? 없다. 감성에 호소하여 덮어놓고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면 곤란하다. 양자를 비교할 대안 제시 없이 무조건 더 내고 덜 받는다는 주장은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공무원으로 청춘을 바쳤다’고 우긴다. 생업을 위해 청춘을 보내는 것이 어디 공무원 뿐이랴. 공무원으로 청춘을 보냈으면 잘 지내지 않았느냐는 말이 나온다. 공무원은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다. 신분이 보장되는 철밥통이다. 이대로 수 십 년을 가면 수 조 원대의 빚 투성이 공무원 연금으로 후손이 고통을 받는다.
연금까지 혈세를 끌어 들여 철밥통을 주장하는 것은 집단이기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지 않고는 개혁을 말할 수 없다. 이 시대의 소명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비인간적인 작업 같아도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세계적인 대세다. 이번 기회에 인간적 결과가 될 비인간적 요소의 제거 수술이 단행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공무원들의 이해와 동참의식이 필요 하다.
임양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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